하라리의 주커버그 비전에 대한 비판은 프레임 재단이죠
[하라리의 주커버그 비전에 대한 비판은 프레임 재단이죠]
(2017.3.26 작성)
아래 하라리가 주커버그의 비전에 대한 비판은 예리하거나 밸런스가 잡혀있다기 보다는 본인의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면이 강하네요. 하라리의 최근 베스트셀러는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그 책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 신문기사에서 그가 인공지능과 차별화한 인간의 강점으로 emotion intelligence를 강조한 것은 시대 흐름에 맞다고 여기기는 했구요. 그런데 아래의 칼럼은 단순프레임이 강해서 변증법적인 밸런스는 보이지 않아서 대가의 느낌은 안 듭니다.
하라리가 주커버그의 비전에 대한 비판은 본인의 자연주의(또는 그 일부로서 인간주의)의 프레임에 다름 아니에요. 주커버그가 SNS로 인류 community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겠다는데 대해서 하라리는 광고유치를 해야 하는 영리기업이 그것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하라리의 프레임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조직(Gesellshaft)와 정서적친연성을 중심으로 한 정서공동체(Gemeinshaft)를 배타적으로 대립시키고 있다는 게 보입니다. 이해관계 사회와 공동체 사회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죠. 하지만 그게 배타적이기보다는 변증법적인 관계이죠. 가족이라는 가장 대표적인 정서공동체도 이해관계가 게재하고(예컨대, 상속을 둘러싼 가족 분쟁이 드물지가 않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회사가 오히려 모범적인 공동체를 보여주기도 하죠(SAS라는 SW회사가 그런 예로 자주 언급되죠). 또는 이해관계라는 것과 정서공유가 아예 불가분의 관계라고 보기도 어렵죠. 이해관계를 배제한 채 정서적 공유만을 강조하는 게 오히려 공허하고 착취적일 수도 있고(가족주의를 내세우는 회사조직 중에서 그런 면이 있죠), 정서적 공유를 배제하고 이해관계 자체로 조정에 충실한 사회(또는 조직)가 오히려 rule of law가 충실하기 때문에 예측가능하고 그만큼 그 구성원들이 제대로 대접받기도 하니까요.
주커버그가 내세운 비전이 이익을 뒤로한 채 앞에서의 명분이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SNS가 여전히 사용자에게 많은 편익을 발생시킨다면 그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죠. 주는 쪽과 받는 쪽에서 상호작용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바가 그 비용보다 많은 것일 것이거든요. 그래서 기업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또는 이익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공동체에 반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판단이죠.
하라리가 명시하지 않으면서 Dunbar Number를 자주 인용하면서 공도체는 150명을 못 넘는다고 하는 것도 너무나도 피상적인 도식적 사고이죠. Dunbar Number는 제가 알기고 160명인가 그런데, 실제 SNS의 연결상대를 그 숫자로 제한한 SNS도 있죠. 분명히 Dunbar Number도 그 취지가 납득이 되지만, 그런데 과연 인간들끼리의 연결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도식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죠. 아주 일상적으로 빈번한 연결도 있지만 분명히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소중한 연결도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수년간 아무런 연결이 없는 경우도 있죠. 이 경우 연결이 없다고 단정해버리면 그것은 인간의 관념의 풍부함을 배제하는 것이 되버리죠. 그리고 직업으로 바쁘다보면 오히려 이해관계에 기반한 연결이 훨씬 더 많고 정서적인 연결은 오히려 뜸해지기도 하죠. 이해관계로 자주 연결된다고 해도 그것은 기억에 남는 활동은 아닐 수도 있구요. 인간에게 있어 연결이라는 것은 대단히 복잡다단한 활동이라서 그 연결을 150으로 단순도식화하는 것은 무리가 크구요. 또 역사적 인물은 비록 그 수명이 다했어도 후세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역사적 인물과의 연결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일반적으로 150명에 포함시키지는 않겠죠.
하라리가 비판한 주커버그의 선언서도 읽어봤어요. 그것이 명분일지라도 적어도 SNS소통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주커버그가 인지하고 있고 나름 그에 부합해서 페이스북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거든요. 주커버그가 크게 제시한 두 문제점으로 '쏠림'(filter 과 '오류'라고 지적하는 것도 SNS를 운영하는 기업으로서 그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보이거든요. 물론 그러한 문제를 말하는 것도 가식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SNS라는 커뮤너티에 기반해서 수익모델이 작동해야 하는 기업의 경영자가 갖는 복잡한 인식은 엿보인다고 해야겠죠. 영리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면 SNS가 무너지면서 회사의 수익기반도 무너진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게 보이거든요. 주커버그가 filter bubble(이라고 지적한 바처럼 페이스북 측의 필터링이 다양성을 헤치는 점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고, 그리고 fakenews에 대한 기술적 대처도 해법을 강구한다고 하거든요.
이렇게 주커버그가 문제를 인식하고 나름 해법을 제시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비판한다면 주커버그가 문제를 잘 못 파악한 게 있는지 또는 해법이 잘 못 된 것인지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비판을 제기해야 제대로 된 비판이 되죠. 하라리는 그런 구체성이 약한 채 '영리기업은 한계가 있다'고 재단해버리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자기 프레임으로 재단해버리면 논의의 발전이 있을 수 없고 그냥 형해화된 진영만 남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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