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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아름다운 자연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드는 곳

데시카 2010. 5. 25. 13:44

(2010.5.25.월)

모처럼 약간의 틈이 나서 주말에 걸쳐서 거제와 통영을 다녀오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해야할 숙제는 마쳤고, 아직은 새로운 숙제가 급박하지가 않은 때가 약간의 틈인데, 참 오랫만에 그러한 때를 얻었습니다.
 
한국의 탁월한 경관이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데, (특히, 남동해) 이 경관이 인구밀접지이자 고급소비인구가 많은 수도권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분포해서 경관의 공급과 소비의 부정합(mismatch)가 큽니다. 제가 스스로 체험하죠.....그래도 남동해를 다녀오기 위해서는 2박3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 일요일에 교통체증이 심하니까, 금-토-일 일정으로 다녀오기가 쉽지 않죠.....이번엔 토-일-월로 일정을 잡을 수 있어서 멀리 다녀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의 공간의 비효율적인 배치는 안타깝습니다.......주말에 가볍게 다녀올만한 데는 그래도 두루 두루 다녀와서, 지금은 마땅히 새로운 곳이 떠올르지를 않습니다.....서울-경기-인천 일대에서는 경관의 만족도가 S자의 위쪽부분인 듯해요.....발품에 비해 만족도 증가는 제한적이라는 거죠........ 이번에 거제-통영을 다녀오면서 이러한 가설에 대한 믿음이 커졌습니다........ 새로운 경관의 금맥이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비록 제한된 지역이지만, 이러한 지역도 그 가능성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나중에 혹시 지금의 세종시에서 일한다면, 국토의 보석같은 곳들을 주말에 교통체증에 시달리지 않고도 다녀올 수 있을 텐데요.......제가 세종시에 기대하는게 있다면, 충분한 고급소비인구가 형성되어서 문화산업과 인프라가 적절하게 공급되는 것입니다....... 세종시가 들어서서 인근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세종시 일대에도 새로운 문화소비시장이 자리잡고, 세종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토의 교통체계가 형성될 수 있어서, 다른 해안지방도 지금보다도 훨씬 더 관광산업의 규모를 키울 수 있고 그 질도 고급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세종시가 들어섦으로서 국토에 끼치는 긍정적 효과가 엄청난 것이죠...... 이렇게 하려면 역시 국가의 공공기관들이 대거 입주하는 것이 좋습니다.......한국은 적어도 한동안은 국가의 주도성이 클 것이구요......그리고 다른 나라나 미국같은 경우의 주들도 효율적인 공간배치에는 수도 또는 주도의 배치가 유력한 수단이죠.......  수도권에서 100만이 빠져나온다고 해도, 수도권에는 흔적도 안보이거든요.....오히려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죠.....공공기관이 대거 분포함에 따른 다양한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구요......예컨대, 청와대가 지금의 경복궁터에서 빠져나간다면, 북악산-경복궁 일대의 관광자원은 극대화되는 것이죠.........서울 중심지의 헬기 투어도 개발할 수 있구요....... 한국은 산이 멋져서, 헬기 투어가 아주 박진감 있을 것이거든요.......
 
거제-통영의 순서로 다녀오고 각각 1박을 했음에도 통영이 보다 머리에 많이 남고 다녀오고 나서도 애착이 갑니다.....거제나 통영이 모두 그 자연풍광이 훌륭하지만, 통영에서는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결이 강하게 느껴졌거든요........
 
통영은 26년만의 방문이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때 남해안 중심의 수학여행을 다녔고, 배를 타고 다니면서 얼추, 한산도의 섬들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나이때는 풍광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밌을 때죠......그래서 기억도 불명료했는데, 한산도 입구의 거북등대 암초만은 기억이 뚜렷했거든요.....당시에도 우편엽서 사진에서 많이 봤던 풍경이라 새삼 친근했었거든요......이번에 그 거북등대 암초 보면서, 아 고등학교때 한산도 앞을 지났구나 라고 확인한 거죠........ 그때 이순신의 사당엘 들렸는데, 그게 통영의 충렬사인지, 한산도의 제승당인지는 기억이 없는 거에요.....이 참에 제승당엘 들렸는데, 그렇게 친근한 느낌이 안들었어요.....규모도 크고 굉장히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더라구요........그래서, 혹시나 해서 충렬사에 굳이 들렸는데, 이곳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좀 허름하고 규모도 작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굳이 오랜 인연을 복원시키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겠죠....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싶은 것 말이죠.......그리고 통영에 도착한 첫날에 궁금했던 게, 예전엔 '충무'였던 것 같은데, 충무는 지도에서 안보이는 거에요......숙소에서 인터넷 찾아보니까, 1995년도에 충무와 통영군을 통합한 도농 통합도시로 통영시가 만들어졌다는 군요........한 때 읍을 시로 만드는게 유행이었다가 인근 군과 시가 생활권이 동일함에도 행정구역이 달라서 비효율성이 커서 다시 도농통합시로 만들었던 그때였나보다라고 흐릿하게 기억이 재생됩니다.....
 
명칭의 변화가 임의의 선택인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명칭과 그 변화 자체가 참 많은 변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충무라는 명칭에서는,  
충무는 1955년에 이순신의 시호를 받아서 지은 이름이라서인지, '국가'라는 권위가 강해게 다가오는 명칭입니다.......... 충무라는 이름을 대하면 경건해야 할 것 같고, 국가의 안보에 높은 가치를 두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죠.......반면에, 통영(統營)은 이순신 보다는 윤이상이 더 잘 어울립니다........그리고 임진란의 과거로 돌이킨다해도, 현재의 추앙받아서 범접하기 어려운 신같은 이순신이 아니라, 없는 전쟁자원을 가지고 국가안위를 고민했던 실존적인 이순신과 병사들, 그리고 통영 인근의 백성들이 떠오르구요......우리에게 있어서 충무공은 특히,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그만큼 존경받지만, 그만큼 멀게 다가온 이름이거든요......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신화 속의 인물로만 여겨졌던 윤이상이 비로서 실존인물로 다가옵니다.........  북에서 환영받았으나, 남에서는 범죄자였던 인물......그럼에도 항상 '통영의 앞바다'를 오매불망했던 인물과 함께 통영이란 명칭이 같이 전해졌거든요..... 정치적인 우여곡절 끝에 윤이상은 끝내 통영에 돌아와보지 못하고, 1995년 이국에서 세상을 떠납니다........그리고 그 해에 통영시가 출범하구요........그리고 2002년 통영은 구천에서도 통영 앞바다를 떠돌았을 윤이상을 '통영 음악제'로 모시고 진혼의 굿을 시작합니다......이처럼 통영은 윤이상과 동일하게 겹쳐집니다......
 
제가 봄과 가을에 하는 통영음악제를 그렇게 다녀오고 싶은데도, 도통 시간을 못 내서 못갔죠......인구 20만이 안되는 중소도시가 지리적으로 불리한 곳에서 훌륭한 국제음악제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선은 윤이상의 무게감이고 다음은 윤이상을 기릴 수 있는 통영시민의 아름다운 마음이죠........ 보수성이 강한 경남의 작은 중소도시에서 통영은 참 독특합니다........윤이상이라는 '좌파' 내지는 '친북' 이미지를 거두어내고 오롯히 민족과 고향을 사랑했던 음악가로 자리매김케 한 것은 통영의 시민의 기여죠.......
 
다만, 통영이 윤이상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한 것일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고, 또 설령 그렇다해도 저는 통영시민을 존경합니다.......조상의 고통은 후손에게는 문화유산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니까요........광주민중항쟁이라는 처절한 광주의 고통이 지금의 광주를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윤이상과 통영이 다만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은 하고 있었죠......통영이 작은 도시임에도 한국의 예술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거둔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통영을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가 있고......통영은 그 예술가들을 기리고, 도시의 경관 곳곳에 스며들게 하는 작업을 해왔죠.......  공공미술프로젝트 1호로서 지금도 가장 성공적이었던 평을 받은 동피랑 마을 벽화도 역시 통영이었어요.........
 
이번에 통영을 방문하면서 통영의 아름다운 자연이 작지만 풍부한 문화도시 통영을 이해하는 실마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통영의 앞바다에서 살짝 반달 모양으로 움푹 파인 곳이 통영의 앞바다('강구안'이 그 명칭)입니다...... cove라는 단어는 참 예쁘게 다가오죠......뾰족하게 튀어나온 지형을 뜻하는 곶이라는 순우리말이 있어서 호미곶과 같이 아름다운 조어들이 많은데, cove란 단어에 대응하는 순우리말을 모르겠습니다..... 강구안이라는 명칭은 금방 이해도 안되고, 어감도 그 아름다움이 전해지질 않아요.......언어적 직관이라는 게 있어서 역시 순우리말은 비롯 뜻을 몰랐을지라도 느낌으로 전해지는 게 있거든요........ 한자어만 되도, 비록 오랫동안 사용했지만, 한국인의 언어적 직관이 작용하기 어렵죠.......  강구안 보다는 그냥 앞바다가 더 좋아서, 앞바다라고 하지요....
 
앞바다에서 바로 얕으막하게 솟아오른 언덕이 동피랑입니다......... 산동네라고 무시하기 쉬운 허름한 집들이 모여있는데, 그래서 재개발의 충동이 강한 지역이죠.......그 언덕에 호텔, 펜션 지으면 제법 장사되겠다라는 생각이 저한테도 들죠........그럼에도 동피랑의 집들에 예술을 담게 되니까, 참 아름다운 곳으로 변모한 거죠....... 변모했다기 보다는 저는 원래 산동네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굳이 외생적인 예술의 힘이 아니더라도 산동네의 집들은 인간이 mother 자연에 기대서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 인공구조물이거든요........과거 봉천동의 산동네 집들이 그렇게 아름다왔는데, 지금은 산과 언덕을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죠......(저도 그곳에 거주하구요)......  동피랑 벽화는 비로서 산동네의 아름다움을 선언하고 개념화한 것이죠......... 유명한 그리스의 산토리노도 산동네쟎아요.....
 
동피랑이 훨씬 더 극적으로 여겨졌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와 어울려 있기 때문입니다...........동피랑 집들만 보는 것이 아니고, 동피랑에 올라서서 통영 앞바다의 멋진 cove를 내려다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평온을 느낍니다..........아마도 cove가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동경이 무의식에 내재해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그리고 또 아무리 거센 바다일지라도 cove안은 평온하거든요..........이렇게 통영앞바다의 감싸안아주는 듯한 지형은 그 지형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품성도 원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부산의 앞바다처럼 일반적으로 바다는 참 남성적이쟎아요........거대한 시야가 열리고 그래서 개척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죠......... 반대로 통영의 앞바다는 참 여성적입니다.......얕으막한 언덕들이 시야에 먼저 들어오고, 지친 선원들이 들어와서 쉬어가고 싶은 그런 앞바다입니다..... 
 
이런 여성적 감성이 통영의 예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런지요........ 통영은 바닷가와 나란한 옛날 도로에 예술가의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윤이상 거리, 초정 김상옥 거리, 청마 거리 이렇게요......그리고 통영대교 남단의 통영해양관광공원에도 윤이상, 박두진, 유치진, 박경리의 초상을 장식물로 두고 있습니다......다녀오지 못했지만 박경리의 묘소도 통영에 있더군요........ 보통 '여성적' 하면 부정적인 뉴앙스로 여기는 면이 있지만, 저는 그 반대입니다......그리고 변화하는 시대가 더더욱 '여성적'인 것을 요구하죠.......... 통영은 그래서 지금보다도 더 앞날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동피랑에서 왼쪽 언덕에 시민문화회관이 자리합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 자리하고 과장스럽지도 궁색하지도 않게 겸허한 외관의 시민문화회관은 처음 봅니다......... 대게 서울의 문화시설에 비해 지방의 문화시설은 한 수 아래로 보게 되쟎아요.......너무 거대하기만 해서 오히려 지방콤플렉스가 비치는 곳들도 많구요........ 그런데 통영 시민문화회관은 단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뽑아도 될 듯합니다......제가 내부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언덕에 알맞게 지여져 자연을 너무 훼손하지 않는 그 겸손함이 무엇보다도 건물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통영의 건물들이 비슷하게 겸손합니다......... 인구규모가 적어서 그럴 수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 부산의 해운대 처럼 오로지 입주자의 조망권만 우선순위를 둔 오만한 고층 주상복합빌딩도 (그래서 정작 전혀 아름답지도 고급스럽지도 않고 헤프고 천해 보이는)........획일화된 거대 아파트 단지도 없습니다..........너무 압도적이지 않은 아파트들이 군데 군데 있을 뿐입니다..........그리고 그 아파트 벽면은 또한 공공미술벽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습니다......처음에 한 아파트의 '벽화' 같은 것을 봤을 때는 그 아파트의 특징이려니 했는데, 많은 아파트들이 벽화를 품고 있습니다....... 아파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자연경관의 훼손에 대해 그 정도나마 용서를 구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예쁘고, 겸허하게 마음에 새겨진 통영에 반해, 하루 전날 들른 거제도에서는 통영처럼 강한 인상을 못받았습니다.......날씨가 궂었었기 때문에 거제도가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을 수도 있겠지만, 거제 해금강을 바라보는 바람의 언덕, 그리고 근처의 아름다룬 섬들.....해안선을 둘러싼 해안도로 모두 정말 아름다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의 사진도 정작 그 안에 사람이 있지 않으면, 우리의 인식 신경은 그렇게 강하게 활성화되지는 않죠.........역시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의 결이 풍광의 아름다움을 완성하죠.......사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딘들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자연은 사막이건, 숲이건 인간에게는 원초적으로 아름답죠.......다만, 자연에 최소한의 가공만 가한 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는 거죠.......  
 
한국 전쟁 당시 포로 수용소가 세워지고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극도의 이념대립과 그로 인한 잔혹한 폭력이 거제도의 감성을 아직도 짓누르고 있을까요.........포로수용소의 유적공원은 이념대립과 폭력처럼 일방적으로 관람객에게 정보공급만 합니다........... 몇 개의 재현물과, 유품, 그리고 홀로그램 동영상이 포로수용소를 되새김하고 있을 뿐입니다.........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투쟁도 돌이켜보면, 그 역시 인간의 문화유산입니다.......당시의 실존적 상황에 대입되어 들어갈 때 지금의 누구도 그러한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이렇게 실존적이고 풍부한 텍스트가 모두 형애화된 채.......파편화된 몇 개 시설물이  방문객을 맞고 있는 것이죠........... 포로수용소는 한국의 그 어느 곳보다도 한국전쟁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현재화시킬 수 있는 곳일 텐데도, 그러한 시도가 두려운 것인지, 이미 무의식적으로 상상력을 짓눌리고 있는 것인지, 몰개성한 플라스틱 미니어추어 이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를 못합니다.........
 
고통의 기억도 그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실존으로 인해 돌이켜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거제도가 참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지만, 한국사람에게서 가장 극적으로 사람의 냄새가 풍기게 하는 것은 역시 거제도 포로수용소라고 생각합니다......그나마 현 유적지가 중학교를 이주해서 만든 곳일 정도로 거제도의 사람들에게 거제포로수용소는 지워버리고 싶은 곳이었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 고통을 안고 삭여서 전진하는 것이죠......... 통영이 윤이상이라는 고통일 수도 있는 기억을 오히려 현재화시켰다면, 그래서 통영이 윤이상이라는 실존과 함께 오롯이 살아있게 했던 것이 않을런지........포로수용소로 인한 고통의 깊이는 외지인이 쉽게 헤아리기 어렵겠지만, 그 고통을 현재화시킬 때 역사는 비로서 끊기지 않은 이야기가 되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아닐런지......동피랑의 허름한 집들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우리의 고단한 삶을 서로 인정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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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에 대한 기억은 미약하게나마 고등학교 시절에 시작합니다.....학교 교과를 윤이상이 작곡했다.....그리고 독일에 가 있다....이 정도가 전부였습니다.......돌이켜보면, 음악선생님이 뭔가 더 많이 설명해주고 싶었던 함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리고 대학시절에 <음악의 이해>라는 이강숙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대학때 맞은 유일한 A+......어쩌면 거의 유일한 A로 말해야 할지도...ㅎㅎㅎㅎ) 현대음악들의 샘플을 접했고 이때 윤이상 음악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당시 음악에 관심이 있어서 '대위법'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윤이상을 언급하면서, 그가 동양 또는 한국의 느낌이 서양음악과 악기에 스며들게 했다고 하면서, 단순하게 서양악기와 편성에 맞춰서 한국의 멜로디를 편곡하는 '한국음악의 현대화'와는 차원이 다른 음악의 경지를 구현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그리고 이후 몇 차례 관심을 갖고 윤이상의 음악을 접했는데, 일반적인 서양의 현대음악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 들었고.....그리고 서양연주자들은 무척이나 어렵게 여긴다던데.....저한테는 편하게 들리더라구요.........보통 서양의 현대음악이 날카롭고 좀 신경질적인 지식인 같은 느낌을 주죠......반면에 윤이상의 음악은 적어도 한국인인 저에게는 감싸안아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윤이상이 통영에서 이렇게 현재화한 것은 여간해서 반갑지 않습니다......설령 통영이 브랜드로 활용했을지라도 ...후손들은 조상의 고통을 먹고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니까요....... 윤이상 거리에는 페스티벌 하우스가 있습니다.......음악제를 준비하기도 하고, 또한 일상적인 음악교육같은 활동도 합니다........  이렇게 지방의 중소도시가 이처럼 훌륭한 문화인프라를 갖고 있고 그리고 여전히 그것이 진행형이라는 게 너무나도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강준만은 한국의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라고 표현했더군요.....저도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문화도 그렇죠..........언젠가 통영이 한국의 현대음악의 메카가 될 날이 왔으면 하고 고대합니다........그래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통영에 가는 그런 상상을 품습니다........

동피랑 언덕의 벽화 들 중에 윤이상을 주제로 한 벽화가 있습니다..(첨부한 사진)....정말 이것은 경이적인 사건이라고 할만하죠.....당연히 집주인의 동의를 구했을 터이구....집주인은 아마도 윤이상을 자세히는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래도 정말 흔쾌히 윤이상을 주제로 한 벽화에 동의했겠죠.......이런 게 개념의 중요성이죠.....적어도 통영에서 윤이상은 개념으로 자리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