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유일하게 처형된 영국 왕 Charles I의 누나인 Mary Stuart의 개인사가 근대전환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데시카
2021. 12. 13. 22:26
[유일하게 처형된 영국 왕 Charles I의 누나인 Mary Stuart의 개인사가 근대전환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역동적인 전환에서 아래 Elizabeth Stuart와 얽혀 있어요. 이 사람이 현 영국왕실의 혈통을 잇게 한 사람이구요. 이 사람의 아버지가 James I인데 스코틀란드 왕이었다가 영국의 왕까지 계승했는데, 당시 신교와 구교 대립이 커서 Elizabeth는 독일 신교 Frederick V of the Palatinate(Palatinate는 독일의 Rheiland-Palatinate 주를 구성)와 결혼을 시켰어요. 첫 아들은 가톨릭 계와 결혼시켰고. 일찍 죽어서 왕이 안되서 세째가 왕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Charles I세이고 영국 왕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처형되었어요. 이것은 Charles I이 구교이고, Cromwell이 신교였기 때문에 종교대립구도도 있었어요.
남편인 Frederic V는 1619년에 보헤미아 왕으로 추대되었는데, 이게 1618년 30년 종교전쟁의 시작인 보헤미아에서의 신교의 반란에서 비롯해요(구교인 Ferdinand를 축출하고). 그런데 합스부르크에 밀려나면서 도망치는데, 네덜란드 Hague에 임시 머물고자 했는데 이게 40년 동안 거주지가 되요. Hague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더치 공화국의 사실상 지도자인 Prince of Orange인 Maurice가 맞았기 때문인데 당시 네덜란드는 종교자유가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80년 전쟁(1548-1648) 중이었어요. Charles I가 죽고 나서는 이곳 Hague가 영국 왕실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Maurice의 아버지는 William the Silent로 불렸던 사람인데 이 아버지 대에서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시작됩니다.
Elizabeth의 시녀(lady-in-waiting, 귀족이라도 시녀가 되었다고 합니다)가 Amalia van Solms인데 이 시녀가 Maurice의 배다른 동생인 Frederick Henry과 결혼하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William II가 됩니다. William II는 Charles I의 둘째였던 Mary랑 결혼하는데, Charles I의 첫째가 Charles II인데, Charles II 다음의 왕위 서열권한을 갖었기 때문입니다. Charles II는 왕정 복위후에 왕이 되었는데, 통치기간이 짧았고 동생이자 Charles I의 세째였던 James II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William II의 아들인 William III은 또 Jame II의 딸 Mary II랑 결혼하면서 2대에 걸쳐 Orange왕가와 Stuart왕가와 결혼이 성사된느데, 이는 다분히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의 공화주의/신교가 프랑스/합스부르크/구교에 대해 견제하기 위한 결혼일 것입니다. William III는 1688년 영국에 '침공'해서 장인인 Jame II를 축출하고 소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성공시켜서 영국이 이후 입헌군주제와 종교자유를 갖는 나라로 안착시키게 됩니다.
William III는 Mary II가 먼저 죽은 다음에 홀로 통치하다가 자손이 없이 죽는데, 그때 Mary II의 여동생인 Anne이 통치하는데 이때 Scotland와 England를 통합해서 Great Britain이라고 합니다. Anne도 자손이 없고 병으로 일찍 죽었는데, 그 이후 왕이 된 사람이 George I인데, 이 사람은 바로 Elizabeth Stuart의 외손자입니다. Geoge I의 엄마가 Sophia인데 이 사람은 Brunswick-Lüneburg (Hanover) 공국으로 시집간 것이라서 George I은 처음으로 독일 혈통이기도 한 것으로 이때부터 영국왕실이 독일왕실 양쪽을 계승한 것입니다. George I를 필두로 이후 George V까지 이어지는데 당시 1차 대전 상황에 직면해서 '독일' 명칭을 왕가에서 떼어서 House of Windsor로 개명한다고 하빈다. George V가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아버지이구요.
Mary Stuart는 자신의 대에서는 (구교였던) 남동생이 처형당햐는 것도 경험했고, 남편이 구교/합스부르크에 밀려서 신교인 Hague에 정착했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Hague에 자리잡게 되면서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게 되는데, 대체적으로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신교/공화주의 세력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어지는 공화주의/신교 혁명에서 큰 기여를 한 인물인 셈이에요. 그리고 그 시대 배경으로는 영국의 청교도혁명(Cromwell 혁명)과 명예혁명,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비롯한 30년 전쟁, 네덜란드의 80년 독립전쟁이 자리하니까 정말 중요한 근대 전환기를 살았던 인물이에요. 이 사람의 인생사를 보면(66세로 졸) 근대 전환기의 유럽 역사가 포착됩니다.
* 유럽의 왕실사는 복잡하기 그지 없는데, 조선왕조 족보를 한 번 알아둬야 조선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듯이 유럽왕조 족보도 머릿속에 넣어두면 유럽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래 기사 본 김에 다시 wiki도 보면서 요약을 해봤습니다.
‘She is fierce and very outspoken. She makes fun of her enemies, the Spanish and the French – she really doesn’t like the French at all. It’s quite rare to come across a woman with such a clear voice at a time when so much was couched in rhetorical language. It’s clear that she was a charismatic woman,' says Nicole Akkerman, whose new biography of Elizabeth Stuart, the queen of Bohemia, has just been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