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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를 통해서 근세의 한국의 지식인을 복원해봅니다

데시카 2010. 5. 20. 15:51
(2010.5.17. 월)
 
드디어 주마간산식으로나마 대략 열하일기를 훑어 보았습니다......책을 사서 가까운 곳에 두면, 결국 책빚에 시달려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느낌이라는게 사회적 흐름과 무의식적으로 같이 가는 것 같습니다. 틈틈히 열하일기가 뉴스에 언급되었고, 저 역시 불현듯 열하일기에서 얻을 게 있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저야, 평균적인 한국 사람보다는 조선에 관심이 많고 또한 조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아마도 열하일기에 느낌이 쏠리기 쉬었겠죠...
 
그런데 열하일기에 대한 사회나 저의 관심은 다만 조선에 대해 자세히 알 고 싶은 복고적 취향은 아닐 듯합니다.....열하일기의 내용이 18세기 후반, 국세가 엄청났던 국제적 국가였던 청(그야말로 Pax Ching)에 대한 것이죠.....조선만 청을 방문했던 것이 아니고 각국으로부터 엄청난 사절이 4대 황제 건륭제를 보러 중국에 왔던 시기죠.....  그래서 이 시기는 아마도, 유교적 교조나 자신감이 강했던 명 그리고 조선의 전기와는 다른 시대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한국에서도 근세라고 할만한 시기가 아니었을런지요......  그리고 그 근세의 시기를 생동감 있게 포착해낸 한 지식인에서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단절"을 메꿔줄 수 있는 missing link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런지요.....
 
탁석산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한국과 조선은 전혀 다른 문화구성체라고 봅니다....."문화구성체"라는 단어는 그가 쓰지는 않는데, 저는 예전에 이진경의 "사회구성체"의 개념에 기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그럴까라는 존재론적 측면에서의 의구심과 더불어, 과연 그렇게 보는 게 좋을까라는 목적론적 측면에서의 효용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편입니다.
 
존재론적 측면은 아마도 논쟁이 끝나질 않겠죠.....탁석산도 그렇게 설득력있게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는 못해요.....다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계기가 아마도 미국에서의 유학시절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유학갔을 때는 너무 신나더라구요......그야말로 "신세계"에 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래서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미국의 스케일을 즐기고...... 또한 각종 파티나 바에서의 모임도 주저하지 않고 다 참석했습니다........제가 내성적이기 보다는 외향적인 면이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미국에 지낸 지 몇 년이 지나니까, 다 시들시들해지고.....제가 미국이랑 겉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이것은 특히,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이 보수화되는 경향 탓도 컸습니다........ 파티엘 가도 여전히 겉도는 느낌이 들구요...... 제가 졸업이 좀 늦어지면서 친했던 몇몇 동기들이 먼저 졸업하니까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한 번 들어오면 어찌나 마음이 편한지........한국도 빨리 변하니까 세대 차이가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문화권의 차이보다는 참 작게 느껴지고.....예를 들면, 아직도 대학생들이 1년 차이밖에 안나면서 "선배님" 해쌓고.....교수님이 뭘 시키는데..."선배님이 뭘 하라고 해서요...."처럼 답하고.......  시간이 지나니까, 미국 항공사는 별로 안타고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타고 오게 되요....비행기 타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에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많이들 그래요......미국에서 중산층으로 무난하게 살아가도 문화적으로 결여감이 드는 거에요.....그러니까 한국 드라마와 쇼 비디오 몇 십개씩 싸놓고 보는 집들이 많아요........ 제 지도교수님은 한국인인데 미국국적을 가지고 미국의 여성이랑 결혼에서 몇십년을 살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에요......한국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는 거에요......미국에서는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체험상, 정서적으로.....적어도 몇십 년 정도의 세대차이는 문화권의 차이보다는 작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그럼 이것을 더 길게 하면, 과연 제가 조선에 태어나서....예를 들면 박지원이랑 같은 시기에 비슷한 신분으로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박지원이랑 말하는게 정서적으로 편할까, 아니면, 현대사회의 미국인이랑 대화나누는게 편할까 그런 질문이 드는 거에요......편한 것의 의미는 그야말로 정서적인 것이죠....... 쉽지 않은 답변이지만, 저는 오히려 250년 쯤 전인 박지원이 더 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열하일기는 나름대로 요 가설의 검증과정으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가설의 검증이다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좀 긴장감도 생기구요......그냥 읽으면 무척 밋밋해서 집중하기가 어렵거든요.
 
열하일기를 저는 주마간산으로 훑어내려갔습니다......김혈조 역의 열하일기(1,2,3)가 고미숙 외(수유+너머 팀)(1,2권)보다 컨텐츠가 많습니다.....아마 번역하고자 하는 원본이 다른 모양입니다....... 편집체계도 좀 다릅니다.... 이왕에 한 본만 산다면 김혈조 본이 더 나을 것 같은데....두 본 모두 괜챦습니다....고미숙외 본은 도해와 그림이 풍부해서 이해하기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2권짜리가 그래도 보기가 쉽기는 합니다..... 번역의 정확성은 제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구요.......여러가지 사진 자료 같은 것들을 참고로 각각 본이 넣고 있어서 차별성이 있습니다....... 김혈조 본은 또 큰 장이나 편 앞에 간략하게 그 장이나 편의 시사점을 간략하게 넣어두어서 이해하기에 좀더 낫습니다....
 
저는 열하일기의 여행기록보다는 박지원이란 사람의 태도, 취향, 입장 이러한 부분들이 서술될 때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추고 주목했습니다.......여행기록은 분량이 많기도 하지만, 좀처럼 내용이 들어오지를 않습니다.......조선시대에는 그러한 여행기 자체가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을 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컨텍스트가 없으니까,,,,그냥 문장들로밖에는 안받아들여집니다.....아마도 그 시대상에 대해서 보다 깊이 연구를 할 때는 분명히 아주 좋은 텍스트일 것 같습니다......
 
한국의 현대가 워낙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단절을 강요당하고 또한 스스로 단절하고자 노력해버리는 바람에, 한국의 근세의 인물들은 굉장히 멀게 느껴집니다.....제가 미국에서 주말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정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조지워싱턴과 대비시킨 적이 있습니다.....정조는  1752-1800, 워싱턴은 1732-1799거든요.......워싱턴이 20살 위였습니다.....아마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를 살았다라고 한다면, 순간 어 정말 그래?라고 의문을 품을 것입니다........  단절이 심각하다보니까 역설적으로 서양의 인물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더 시기적으로 가깝게 다가오는 거죠......
 
인물에 대한 느낌도 단절이 심하지만, 저서에 대한 것도 그러하죠....... 먼저, 한문에서 한글로의 문자의 큰 전환이 있었구요......그리고 한글 문어체가 신문 등 공식영역에서 씌여진 지도 100여 년밖에 안되어서.....엄청나게 많이 변천했죠....기미독립선언문을 읽으면서도 해석이 별도로 필요하니까요........  지금도 Adam Smith의 국부론(1776)은 읽어볼만한 책으로 권해지죠....저도 제대로 읽은 아니지만, 얼추 현대 영어랑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사회가 근대화 또는 현대화로 가면서 너무나도 독하게 과거랑 단절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합니다.....단절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휘어진 못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반대쪽으로 너무 강하게 치니까, 오히려 지나치게 반대로 휘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대한 관심을 그냥 민족주의나 그런 것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저는 과거 역시 현세적인 시각에서 보는 편이거든요......예를 들면, 한국에서 인류의 지성사에 내놓을 만한 게 딱히 별로 없습니다......다만, 유학을 중국보다더 더 철저하게 내면화할려고 했다는 점이 독특했다고 할까요 (불교는 아직 잘 모르겠더라구요)......그렇다면, 그러한 전통이 유학의 현대적 해석이나, 현대적 적용에서 한 몫을 할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지요.......그리고 보다 세속적으로는 퇴계와 도산서원 그리고 그 유학적 전통이 생활화한 안동 등의 지역이 문화자산으로 남는 것이구요, 그리고 지역의 독특함 그리고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인류사에서 동양은 분명히 큰 지분이 있는 것이구요, 그 지분은 앞으로 커질 가능성이 많겠죠......그렇다면 동양문화의 중요한 축인 유학은 보다 더 주목받는 것이죠.......수년전에 아시아 4룡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도 미디어에 회자되고....그러면서 유학도 주목을 많이 받았죠.......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학에 있어서의 학문의 성과는 하버드의 엔칭연구소나 콜럼비아대학의 동양학이 계승시키고 있죠......... 한국 사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학문분야에서도 역설적으로 서구로부터 배우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김용옥이 하버드에서 박사를 하쟎아요.........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단절시키는 바람에 스스로 공허해져버린 과거..... 그 결과, 과거의 모든 문화가 박제화된 채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풍상으로밖에 남지 못한 것.....그래서, 팔 문화상품이라는 것도 스스로에게도 자부심이 없는 그런 상황......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려운 문화산업으로 성장동력을 삼겠다고 하는 것........  이런 부조리하다고 할 수 있는 현실......그래서 우리는 마치 서양문화에 입양되버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죠......입양이 되어서 나름 잘 자랐지만, 늘 결핍감을 느끼다가.... 이제 마치 제가 박지원에서 미약하나마, 양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친부모의 흔적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요.......그래서 늘 콤플렉스일 수밖에 없었던 탄생을 드디어 신화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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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도입이 길어져 버렸습니다.......말씀드렸던 것처럼 열하일기에서 드러난 박지원이란 근세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어떠한 문화적 감성과 세계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간단하게 짚고 가겠습니다..... 김혈조 본에 기초해서 필요한 내용에 페이지를 적당히 붙입니다.
 
무엇보다도 박지원의 오늘날에도 주목받는 매력은 그 감성적인 솔직함과 더불어 동시에 지식에 대한 갈망이 여실히 잘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작가는 모르지만, 그런 면에서 박지원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계몽주의적 서구 지식인과 참 유사하게 느껴집니다.....그래서 박지원이 다른 사람보다도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죠.......
 
박지원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굉장히 강했습니다....... 청에서 다양한 수레를 목격하고 이들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1권 263-270).....조선은 왜 저런 수레가 발달하지 못했는지 한탄하구요........박지원이 기술한 수레 중에는 물을 멀리 뿜어서 불끌때 쓰는 소방수레도 있었습니다....경이적이었겠죠.......아마 1세기 전에 인질로 청에 간 소현세자가 강하게 인상을 받도 조선에 대한 다른 비전을 품었던 것이랑 비슷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나 신기한 것들은 무수히 많이 등장합니다....풍금이라던지....신기한 마술이라던지(3권 17-37).....벽돌담이라던지(1권 79)....벽돌로 깐 온돌이라던지 (118)....종이라던지...(1권, 343)....풍금이나 마술처럼 신기한 것으로 기술하는 것도 있지만, 수레같은 것을 보고서는 ...."왜 우리 조선은 이렇게 못하나...."...이렇게 자조하기도 합니다....벽돌담이나 온돌도, 굳이 중국게 더 낫다고 평하기도 하구요........... 지적인 욕구가 강한 만큼 마음 한켠으로는 당시 조선의 부족한 점들에 대해서도 많이 아쉽게 느끼는 듯합니다......우리 현대의 100년도 거의 그렇다라고 봐야죠.....지금도 그렇게 썩 자유롭지는 못하구요....서구의 것을 모델로 삼고 그 전거가 있어야만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풍물 못지 않게, 새로운 철학이나 종교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습니다......이슬람(법교라고 했더군요)에 대해서도 논하고 ...... 라마교(황교라고 하구요)해서도 길게 토론하고 (2권 166-221, 황교문답=라마교에 대한 문답)......기독교(야소교라고 합니다)에 대해서도 토론 (2권 398, 3권 283)도 나눕니다.........천주당을 방문하기도 하구요(3권 284)....마테오리치의 무덤도 방문합니다.(3권 372).....  그렇다고 그가 주자학에 대해 단절한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주자학에 대한 다소 보수적인 생각 (3권 278. 심세편=천하의 대세를 살피다)은 여전하구요.....기독교에 대한 이해도 다분히 유학(하늘의 뜻=천주 같은)이나 불교의 측면(내세관 같은 것)에서 이해합니다.......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교조적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도 많습니다(2권 385-398).......그가 가끔 언급하는 홍대용으로부터 배운 내용일 것 같은데......지구가 둥글고 아마도 자전할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달에서 지구를 보면 아마도 '보배로운 구슬'처럼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달이나 지구나 비슷한 원소로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구요......이렇게 굉장히 서구의 근세적인 우주관을 상정하는데.......다분히 형이상학적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지구가 둥근 이유는 "하늘이 창조한 물건은 모가 난 것이 없습니다."......... 홍대용은 탁월한 천체물리학자가 되었을 듯도 싶습니다....그는 천체의 속도를 계산해보고 싶은데 아직 잘 못하고 있다고 박지원이 전합니다........홍대용이 당시에 유럽이나 청에만 있었더라도 조선의 한 지식인이 아니라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변방의 한 국가의 지식인의 운명도 그 국가에 규정되는 것이죠.....
 
이러한 토론이 많이 실려 있는 부분이 <곡정필담=곡정과 나눈 필담>(3권 378-473)인데....창문을 마주하고 여섯날 동안 밤을 세워서 얘기를 나눈 것이라고 합니다......... 음악(3권 292-376, 망양록=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이야기), 역사, 정치(3권 278-289, 심세편), 약 (동의보감도 나옵니다...3권 173-176)... 할 것 없이 방대한 주제들에 대해 논의하는.....그야말로 한국의 백과사전파라고 할 수 있겠지요......비록 멀리 떨어져있고 교류도 없지만, 세계가 그렇게 따로 각각 변천하지는 않는 듯도 합니다...... 조선이 패망하는 덕에 이 근세 지식인의 사고가 한국의 인문주의나 계몽주의로 이해되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혀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 썼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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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드러내는 가장 복잡한 심사는 청, 명, 조선, 그리고 과거의 조선일 것입니다.......그는 한편으로 청의 문물에 압도당합니다.......  당시 한마디로 청은 세계에서 없는 것이 없는 문명국이었죠.....그리고 천주당이나 법교, 라마교 등 온갖 종교를 다 개방한 cosmopolitan한 국가였죠........한국이 아직도 송시열 같은 노론의 영향으로 청을 "때놈"이렇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청은 박지원이 방문한 당시 4대 건륭제에 이르기까지 역대 가장 탁월한 4명의 황제가 실용적인 정책을 펴서 팍스 로마나에 버금갈 정도로 사회가 개방적이고 실용적이었죠.....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가 이때 만들어졌고, 그 경계가 지금도 이어지는 거죠.......
 
이러한 청에 압도당하고 또한 배우고 싶으면서도, 박지원은 보수적인 주자학자로서의 태도도 드러냅니다.......그리고 청에 대해서도 한 수 접어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우리가 청나라의 힘에 굴복했으니 그들은 바로 강대국이다. 청나라는 힘으로 우리를 굴복시킨 강대국이지만 우리나라를 나라로 인정해 준 천자의 나라는 아니다."(2권 260)....... 그리고 청나라의 주자학에 대한 장려도 사실은 사대부들에 대한 회유로 봅니다....."황제가 걸핏하면 주자를 내세우는 까닭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다. 천하 사대부들의 목을 걸터타고 앞에서는 목을 억누르며, 뒤에서는 등을 쓰다듬으려는 의도이다."(2권 284).....
그러면서도 한사군과 같은 역사에 있어서는 북한지역 아닌 심양지역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1권 163)......이처럼 한편으로는 주자학과 명에 대한 존중......그러면서도 청과 새로운 문물에 대한 동경......그러면서도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주체적 시각...... 등등으로 그의 심사가 무척이나 콤플렉스임을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정말 박지원은 콤플렉스이고 우리 현대 한국인은 그렇지 않나요?.....저는 무척이나 유사성이 있는 듯합니다......그래서 박지원이 오늘날의 지식인에게도 굉장히 실존적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이런 점이 박지원이 오늘날 현실에 있어서도 보다 더 구체성을 갖는 것이 아닐런지요......
 
박지원이 비록 제기발랄한 조선의 지식인이지만, 거대한 청이라는 세계에 진입하면서 위축감을 고백합니다....."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2권 p. 471)........ 그리고 책문이라는 중국의 끝마저도 건물들에서 위압감을 느껴 기가 꺽임을 토로한다...."길을 나아가며 유람하려니 홀연히 기가 꺾여, 문득 여기서 바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온 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1권 61)....
 
그렇게 주눅들인 한 지식인이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조선의 인민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배우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천하를 통치하는 사람은 진실로 인민에게 이롭고 국가를 두텁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그 법이 오랑캐에게서 나왔다 하더라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그러므로 지금 사람들이 참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국의 남겨진 법제를 모조리 배워서 우리의 어리석고 고루하며 거친 습속부터 바꾸는 것이 급선무일 거시다.....밭 갈고 누에 치고 질그릇 굽고 쇠 녹이는 풀무질에서부터 공업을 고루 보급하고 장사의 혜택을 넓게 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배우지 못할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이 열 가지를 배우면 우리는 백 가지를 배워 먼저 우리 인민들을 이롭게 해야 한다" (2권 252-253).....우리가 흔히 실학...더 구체적으로는 북학이라고 하는 그 지향이 이런 포부로 드러납니다.......
 
스스로를 "삼류 선비"라고 칭하는 박지원은, 참 그의 정서를 기꺼이 드러냅니다.......그만큼,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결여되어 있는 근세의 missing link로 적합하지 않을런지요.....박지원의 솔직한 고백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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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교과서에 '일야구도하기=밤에 9번 건너다'라는 글이 국어책에 있었죠.....그때 이해가 안되더라구요....뭐 이런 내용이 책에 왜 있나 싶었어요.....김혈조 본에서 읽으니까 그 의미가 와닿더라구요 (2권 482-486)....고미숙 본은 옛날 교과서랑 비슷한 듯해요......주제는 "도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인데....김혈조 본이 좀더 의미가 잘 부여된 서술(articulation)하고 있어서 좋네요
 
이렇게 한 번 독후감을 쓰니까, 시간 들인 만큼이나, 책자를 넘길 때보다 훨씬 낫네요.....박지원의 현재성이 좀더 와닿는 거죠......박지원 정도면 참 지금도 재밌게 대화할 만한 사람인 듯합니다......나이가 44라서 당시로서는 작은 나이도 아닐텐데....그 진지애와 열정은 청년같습니다........ 아마도 지식애가 강하고 재기도 많은데 다만, 언어가 옛스러워서 가끔 말문이 막히게 하는 노인같지 않을런지요........제가 서두에 가설로 제기한 것....."박지원과 미국인이 지금 앞에 있다면 누가 더 편하게 대화할 상대인가?".....그 답이 서두를 작성할 때보다 지금 말미에 더 YES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