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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시대, 경제학의 무능

데시카 2010. 7. 20. 15:14
(2010.7.19)

문화란 단어는 부지불식간에 그 의미가 확 달라져 버렸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교양의 의미로,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수준있는 지적/예술적 집합적 활동으로 이해되었었던 과거가 있죠. 그러다가 어느틈엔가, 문화와는 아주 거리가 있다 싶었던 경제적 활동과 관련되어서 사용됩니다. 문화산업, 기업문화, 문화상품, 문화경제학 등이 그러한 단어들입니다. 제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문화에서 세속적인 수익 또는 이익이라는 동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익의 측면이 정작 경제학적으로 설득력있게 이론화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화활동 중에서 상업화 또는 산업화 된 분야들을 열거하고 그 현황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관련 문헌은 아래에) 이것은 경제학이 아직은 문화라는 독특한 대상을 포착하기에 미비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재화라는 구체적 소비대상에 천착해온 기존 경제학엔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문화까지 아니더라도 서비스라는 비물질적 경제재만 하더라도 그에 맞는 적절한 경제학적 분석이 아직 없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서비스만 하더라도 1980년대 이후에야 이를 경제적 분석대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신고전학파 혁명 이후 경제학이 나름대로 사회과학의 왕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노벨상을 수여받는 분야가 되면서, 경제학은 비물질적 대상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더 멀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쯤 이후에 다니엘 벨 등에 의한 후기산업사회론이 등장하고 물질적인 경제재가 아니라 정보라는 새로운 경제재와 지식이 등장하죠. 이러한 비물질적인 경제재는 기존의 생산-소비의 분석틀로는 접근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서비스된다는 개념에 가까와지구요. 시간이 좀더 지나면서도는 언제부턴가는 도시경관(amenity)이나 문화가 경제재로 부각되죠. 공연, 관람, 관광과 같은 활동들이 경제적 활동이 되면서 이러한 활동을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시킬려고 하는 노력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은 급박하게 전개되지만, 정작 그와 관련된 이론은 아주 더디죠. 

케인지안 경제학이 퇴조하는 1970년대는 동시에 경제학이 현재의 역동적인 경제활동을 분석하는데 무기력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케인지안 이후 등장하는 통화주의 경제학은 시장에 맡기라고만 할 뿐 경제학이 어떻게 새로운 부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조언을 주지 못하죠. 이러면서 부의 창출과 관련된 조언은 경영학에서 보다 활발하게 제시해주는 시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제학의 기본 그림은 자본과 노동을 결합해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선진국의 경제는 자본이 있음에도 경제의 위기에 빠져들죠. 더 이상 자본만으로는 경제의 활력을 보장할 수 없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동시에 그러한 개념들에 기반한 경제학도 퇴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980년대 이후 가시화한 정보화혁명은 정보라는 것을 다루는 기기와 통신에서 새로운 부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새로운 부의 동력을 목도하게 되죠. 빌 게이츠와 같이 자본이 없었음에도 OS라는 새로운 정보처리시스템(그것도 정보들로 이루어지죠)만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죠. 또한, 선진국의 기업들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디자인과 브랜드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합니다. 나이키, 뤼비똥이 그러하죠. 기업의 부가가치가 물질이 아닌 상징 또는 기호에 기반하게 되죠. 도시는 과거 노동자들의 집결지에서 어느덧 문화 또는 경관(amenity)를 매개하는 곳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가동이 중단된 공장은 미술관으로 변모하게 되고, 기능 중심의 도시계획은 경관(amenity)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됩니다.
 
이 시기에 경제학은 무력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일컬어지는 철학, 사회학은 각광을 받게 되죠. 그리고 현실에 기민하게 반영하는 경영학은 '브랜드경영'과 같은 지식상품들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30년에 걸쳐서 문화라는 새로운 경제재가 부각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문화라는 개념 자체도 이전의 낭만적 또는 정신적 활동에서 목적의식적 경제적 활동으로 180도 그 개념이 전환되었구요. 서비스, 정보, 문화산업, 공연예술산업, 문화경제학 이라는 개념들이 크게 경제제로서의 문화의 시기가 낳은 파생개념이고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개념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문화가 경제활동에 전면화하면서 이것을 이해하고 분석할 이론을 찾게 되는데, 아쉽게도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죠. 그래서 다른 학문 중에서 문화를 분석하는데 효과적인 학문분야를 찾게 되는데, 근접한 게 사회학이죠. 

사회학에서는 문화 자체를 전면적인 분석대상으로 삼았던 시기와 학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독일에서 였죠.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과학이 대두합니다. 독일의 신칸트주의자 리케르트는 가치배제적인 연구와 가치연관적인 연구로서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과 문화과학(kulturwissenschaft)을 구분합니다.(이상엽 번역, <문화과학과 자연과학>) 자연과학은 보편적원리에 천착하면서 개별적인 개성은 사라지지만 문화과학은 개별적 개성을 드러내는 방법론에 기반한다고 합니다. 리케르트는 이러한 방법론을 역사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리크레트의 문화과학은 역사적 문화과학이라고도 합니다.  

문화과학은 역사학과 사회과학을 포괄하는데 베버에 의해서도 그 개념이 계승됩니다. 베버는 가치개념이 내포된 문화과학에 대해서 자연과학의 실증주의와는 다른 방법론을 모색합니다. 그래서 이상형(ideal type)같은 연구자의 가치지향이 내재된 개념을 제시하게 됩니다. 문화과학의 중요한 한 축인 사회과학(sozial wissenshaft)은 경제학, 사회학등으로 구성됩니다. 경제학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행위에 초점을 둔다면, 사회학은 집단의 구성/결속 등 직접적으로 비경제적인 인간의 활동이나 관계에 초점을 둡니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들을 전반적으로 문화과학으로 포괄해서 이해하는 것은 형식상의 구분 정도가 아니라, 문화라는 개념이 관통하고 있다 것입니다. 독일에서 문화는 18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형성된 교양시민계층 또는 지식인 (부르조아는 기존 융커귀족에 영합)들이 급속한 산업화(문명화)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화자본 또는 문화적 비전하에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욕구를 반영합니다.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인 사회현상이지만, 베버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정신적 또는 문화적인 측면과 결합해서 자본주의를 설명함과 동시에, 이러한 자본주의에 몸담고 살아가는 교양시민계층에게 자부심을 부여한 것입니다. 동시기의 사회학자 짐멜 역시 <돈의 철학>이라는 대표적 저서의 제목이 시사하듯, 문화과학이라는 측면에서 베버와 유사한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계혁명론자인 멩거 역시 사호화 고립된 원자화된 개인을 상정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개인중심의 가치와 사회가 연계되어서 이해라려는 경향이 강했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점에서 파레토 역시 사회학자로 보게 됩니다. (김덕영의 <짐멜이냐 베버냐>가 이러한 맥락을 설명하고 있음) 이처럼 '문화과학'은 경제, 사회, 문화, 가치 등의 다양한 개념들이 응측되어 있어서 현재의 고립된 경제학이 '문화'에서 실패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다시 참고해볼만한 중요한 역사적 경험이라고 보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전후는 학문의 전문화경향이 강했다는 점에서 독일의 문화과학은 독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사실은 같은 시기에 자연과학, 공학 등이 전문분야로 자리잡고 대학에 입성하면서 분과학문체제가 만들어지니까요. 영국에서는 스미스, 막스, 리카도와 맬더스 등 고전파경제학에서 시작하여 그리고 마샬 등 캠브리지대학을 중심으로 신고전학파가 형성되면서 경제학은 아주 성공한 독자적 학문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학 등과는 아주 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만해도, (정치)경제학자라는 인식보다는 도덕철학(moral philosophy)라는 의식이 강했죠. phiolosophy가 포괄적인 학문이라면, 윤리학과 같은 인문적인 학문은 인문과학(humanity)으로, 자연에 대한 연구를 하는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은 자연과학으로(natural science)로, 사회에 대한 탐구는 사회과학(social science)로 분화발전하게 됩니다.(독일의 문화과학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합친 개념이겠죠) philosophy보다 science라는 단어가 보편화된 것은 1800년대 중반부터인데, 애초 science라는 단어도 학문이라는 보편적 의미가 있었지만, 그 의미를 과학혁명이후 신과학(new science)에 한정하여 아예 science라는 개념이 된 것이죠. 이 science에 philosophy가 가지고 있는 사변적 사고에 대한 대항의 개념이 주어진 것이죠.(김영식의 <인문학과 과학>이 science의 개념의 역사적 변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함) 이러한 science 개념의 분과학문체계는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고, 사회과학에서는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왕자 자리를 차지한 것이죠.

하지만, 이제 경제학이 오히려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것이죠. '경제'라는 활동만을 분리시켜서 대상화시켜 성공한 듯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문화상품, 문화산업과 같이 종래에는 개인적 취향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버젓이 경제랑 결합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시점에서, 경제학은 그 외연을 또는 그 컨텍스트를 보다 크게, 독일의 문화과학으로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래에 무관심했던 사회학 또는 철학으로까지 그 사변을 확장할 필요가 생긴 것이지요. 경제학에 문화에 무력한 사이에, 사회학에서는 보드리에르의 'simulation'과 'simulacra'와 같이 정보사회/가상현실에 대한 개념을 제공하고(그래서 가상현실게임이나 가상현실영화와 같은 문화상품에 접목할 수 있고), 부르디외는 문화자본 (symbolic capital)이라는 개념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그 통합적 사고에서 베버와 짐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문화는 더 일반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일정 정도에서는 자연과학/공학(문화에는 기술이 내재되므로)도 포괄해서 이해해야할 계기로 작용합니다. 그야말로 분과학문으로만 발전하는 듯이 보였던 학문의 흐름이 이제는 다시 수렴되거나 통합적일 필요가 커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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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소개한 자료 외에 문화에 대해 볼 만한 자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에 대한 사회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접근에 대해서 교과서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한 책이 Smith and Riley의 Cultural Theory입니다. 1판은 Smith 단독저서였습니다. 이 책은 <문화이론: 사회학적 접근>으로 1판의 번역본이 있습니다. 제가 번역본은 예전에 읽어서 문제의식이 약했을 때인지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이 책이 있다는 것을 영문본을 본 후에 깨달았으니까요) 최근에 영문본을 보면서 메시지가 명쾌함을 깨달았습니다.  

<사회과학에서의 문화개념>(드니 쿠슈 지음)도 문화개념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역사적 맥락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경작이라는 원래 개념에서 18세기 이후에 점차 더 은유적인 개념으로 변해갑니다. 인문적 교양에서 시작해서 집단의 특징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문학적/문화인류학적인 문화개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염두에 둔 경제와 접목하는 개념쪽은 상대적으로 미흡합니다.

베버의 <문화과학과 사회과학방법론>(염동훈 옮김)도 볼 만합니다. 독일의 국가주의자 또는 역사학파를 비판하면서 베버가 자신의 방법론(이상형 같은)을 서술합니다.

이상호의 "문화경제학의 쟁점과 가능성: 트로스비와 클래머를 중심으로"(동향과전망, 76호, 2009년 여름호)도 참고할만 합니다. 이 논문의 저자는 경제학, 인문학/사회학 등에 모두 관심이 있는 듯합니다. 논문에서도 드러나는 바, 아직은 문화경제학의 전반적인 연구가 인문학/사회학과 경제학의 접점 정도인 듯합니다. 하나의 완성된 체계로는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밖에도 <문화의 경제학>(박광순 저), <문화예술경제학>(Bruno S. Frey 저), <자본주의와 문화산업> (신융창 외 저), <문화경제학 만나기>(한국문화경제학회 저), <문화산업론>(이대희 저), <문화경제학>(이케가미 준 외 저; 황현탁 역), <문화예술경영: 이론과 실제>(하계훈 외; 생각의나무 출판사) 등이 있는데, 아직은 개별화된 문화산업이나 상품을 경제적 맥락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고 큰 이론적 프레임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