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국립박물관 관람 추천

데시카 2010. 6. 3. 19:35
(2010.6.3)

어제 지자체 선거가 수요일에 하는 덕택에 느즈막한 오후에 국립박물관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수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하는데, 게으름 부리다가 늦게 가도 쫓기지 않고 관람을 할 수 있거든요...... 
 
국립박물관은 미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1) 무엇보다도 넓은 부지에 마음먹은대로 큰 공간의 현대적인 박물관을 지을 수 있었죠.....이게 일반적으로 입지에 제한 받는 많은 세계적인 박물관들과의 차이죠......... 영국박물관, 루브르, 고궁박물관(타이완) 등이 제한된 입지에 있어서 여유감이 없죠.........
 
(2) 그리고 전통적인 박물관들이 빡빡하게 전시물들을 채워 놓는데 반해, 국립박물관은 넉넉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전시물에 대한 집중성이 높습니다.......이에 대해 전시물이 빈약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는 현대의 박물관에서는 전시물 자체보다는 그 전시(curation)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개의 전시물일지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죠........그리고 지금은 IT기술을 활용해서 상상적인 재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상 전시물(virtual exhibit)을 무한하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을 가면 정작 너무 전시물들이 넘치니까 별로 주의 집중을 못하고 훑어보고 지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역설적으로 세계적인 전시물들이 흔한 느낌이 드는 거죠......반면에 전시물에 대한 집중성을 높이고 또한 전시물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컨텐츠가 결합되면, 그만큼 소중한 경험이 드는 것이죠.......백제 전시관에서 금동향로는 향로에 배정된 공간도 많을 뿐 아니라, 향로의 문양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큰 그림을 통해 보여줍니다.......이런 게 있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단 하나의 전시물에서도 강한 인상을 받구요..........  이런 점에서 국립박물관이 유명한 세계적인 박물관보다도 더 현대적인 curation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상전시물에서도 좋은 기획물들이 있습니다....... 석굴암의 제작과정, 황룡사9층석탑(이미 불타버린 거죠), 조선의 풍속화 등을 동영상으으로 제작했는데,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으니까 좋죠........굳이 실물이 없어도, 어떤 면에서 실물보다도 이렇게 해설을 잘해주는 동영상이 머릿속에 남는 것이죠............저는 어떻게 생각하면, 박물관은 실물을 대면시켜주는 인식보다는 몇 개의 단서가 되는 실물을 제시하되 그것보다는 상상력의 공간을 열어주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어떤 면에서는 실물 또는 원본은 없어도 얼마든지 박물관을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국립박물관의 관장이 최광식이란 분인데. 이 분이 굉장히 아이디어가 풍부합니다......제가 KBS에서 한 세계로 가는 길을 묻다라는 명사 초대 강연 프로그램에서 이 분을 봤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을 불러모을까, 그리고 불러모아서 인상을 강하게 남길까 이런데 신경을 많이 쓰더라구요......그래서 예를 들면, 도자기에 모티브를 둔 의상 패션쇼도 했죠........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참 아이디어가 좋다.....그리고 TV에서 본 그 일부 장면들이 멋지다 싶었습니다.......... 문화는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하게 현대적 해석을 할 때 의미가 있거든요..........이렇게 과거를 잘 해석해서 현대와의 소통을 만들어내는 것을 참 잘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갔을 때 중앙 복도에 숭례문 등 조선의 한옥의 지붕들에 대한 미니어쳐 (그래도 꽤 큽니다.)......그리고 용포라고 기둥과 지붕의 사이에 두는 목조구조물의 실제 크기 전시물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게 참 좋았습니다........우리가 한옥은 대게 익숙하다고 여기지만, 그 구조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죠.....(아래 블로그 인용)..저도 일부러 책을 보고 좀 개념을 접한 정도입니다........그리고 대게 한옥들이 오래되다 보니까, 멋지다기 보다는 낡았다는 느낌만 들고 별로 주목하기 어렵죠.......이번 전시회는 그야말로 막 만들어져 그 구조가 깨끗하게 드러나게 되니까 그 멋스러움이 잘 드러납니다....... 아이들도 미니어같은 느낌이 들어서 친근해하는 것 같습니다.........이렇게 전시를 하면 당연히 관람객과의 소통 수준이 높아지죠........지붕의 구조는 대단한 미술품으로 생각안하지만, 거기에서도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구요.......
 
이처럼 새롭게 컨텐츠(동영상, 미니어처, illustration)를 창조하는 것은 돈도 많이 들고 연구도 많이 해야 합니다........그런 일이 사람에 많이 의존하니까 다양한 지식노동을 필요로 하구요.........한편으로는 비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합니다.......한국의 박물관은 처음부터 전시물의 보여주기에서 출발한 면이 있지만, 원래 서구의 박물관은 학술연구와 함께 발전한 것이죠..........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것도 그 연구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것이구요.........최근에 EBS에서 스웨덴의 스텐베리라는 박물학자가 일제시대 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동물(특히 새)를 채집한 것....그리고 사진들을 다큐로 보여준 게 있습니다.......스텐베리가 곧 박물학자인 것이죠........... 이렇게 전시물의 선정과 해석도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대중에게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새롭게 부가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많은 전문성을 요구합니다.........그리고 다학제적이구요.........이런 전문성에 대해 공공부문에서 투자를 많이 할수록, 인문학 분야에서도 일자리가 늘어나고.....IT기술분야에도 수혜가 가는 것이죠.........
 
많은 노력 덕택인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시아에서는 관객 1위를 기록하고 세계적으로는 10위를 했다고 하네요......입장료를 받지 않으면서 어떻게 수를 세는지는 의아하기는 한데.......저는 충분히 국립중앙박물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공연전시관도 함께 있고, 옆에는 용산가족공원도 있어서 두루두루 즐기고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죠..........
 
다만, 돈이 좀 더 들긴 하겠지만, 역시 컨텐츠(curation과정에서 만들어내는)가 보다 풍부하고 보다 접근하기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동영상들은 아직은 대부분 한글 narration만 있고 영어자막은 없더라구요.......외국인들이 좀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구요........국립박물관은 외국인이 많이 찾기 때문에 영어자막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 같아요...........그리고, 이거는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인데, 전시물의 귀탱이에 조그마한 LCD화면을 부착해서 필요한 사람이 버튼만 누르면 동영상과 설명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많은 전시물들이 여전히 이름만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스쳐지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음성정보제공기기가 있지만, 그게 썩 편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그리고 그 설명 품목이 한정되어 있구요........전시물 하나를 제시하면 그것을 설명하는 컨텐츠가 하나씩 있어야 하지 않을런지요......... 예를 들면, 제가 다큐를 많이 봐서 아는데, 고구려에는 대마 지뢰가 있었습니다......다른 게 아니라 말이 밟아서 발바닥에 깊숙이 박히도록 한 5cm 가량의 꼬챙이입니다........그런데 제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얼핏 보고서는 무엇인지 알 길이 없죠.........
 
제가 대만의 고궁박물관에서 느꼈던게........왠만한 전시물이 대게 우리나라로서는 국보급이다 싶을 정도로 청나라 유물의 화려함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빡빡하게 제시되니까, 그냥 one-of-many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만이 워낙 실용적이어서 그런지,...아니면 curation과 같은 서비스의 개념이 약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오히려 소중한 유물이 가볍게 다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유물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부여하고 그리고 소중하게 모시는 후손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봅니다......... 국립박물관은 이러한 기조위에서 잘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석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