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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Grant의 Give and Take는 강추인데 약간의 caveat을 더하고 싶어요

(2013.7.24)

[Adam Grant Give and Take는 강추인데 약간의 caveat을 더하고 싶어요]

 

일전에 Grant가 화두로 떠올린 give에 대한 New York times의 기사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톤으로 소감을 쓴 게 있어요(http://desica.tistory.com/entry/giving은-좋은-것이고-노력해야-하지만-그것도-과유-불급이죠). 운이 되어서 그가 쓴 책을 일부라도 보게 되었는데 대단히 인상적이다 싶어요. New York Time 리포터가 제대로 메시지를 담지 못했다는 게 확연히 느껴져요(요즘 국내뿐 아니라 미국도 일간 신문지들의 위기인 것 같아요. 제대로 기사를 못 쓴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신문기사만 보고서는 Grant의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어요. 약간 멜란콜릭 트렌드에 부응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런데 읽어보니까 역시 Grant가 젊은 나이에도 미국에서 주목받는 심리학자/경영학자의 지위에 왜 있는지를 알겠어요. 이 정도 책은 쓸 수 있어야 그런 정도 주목을 받는 게 당연하죠. 미국 또는 영어권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Grant의 책은 이미 유명해졌지만 아마도 stedy seller의 지위가 확실할 것 같아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에요. 이 점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구요. Grant는 사람들의 유형을 2 x 2 로 구분해요(6). 다른 사람의 이해에 대한 태도(concern for others' interest) 그리고 자기의 이해에 대한 태도(concern for self-interest)로 나누어요. 얼핏 보면 두 기준이 경합적인 것이라고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Grant의 도식의 멋진 점이에요. 각각의 기준에 있어서 고와 저가 있어요. 그래서 4가지 유형이 나옵니다. (1) Grant가 강조하고 있는 유형은 양쪽 기준이 다 높은 쪽이에요. 이를 otherish라고 명명하고 이들이 successful giver가 된다는 거에요. 이 유형이 Grant의 책의 주인공으로 본받아야할 유형이에요. (2)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높은데 자기에 대한 배려가 낮은 유형을 selfless라고 명명하고 이들은 self-sacrificing givers 가 됩니다. 이 유형은 giver 중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유형입니다. 대단히 주의가 요구됩니다. 이 유형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요. (3) 자신에 대한 배려는 높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낮은 유형을 selfish라고 해요. 그리고 taker가 되구요. 이 유형은 원래 있는 개념이죠. 그런데 Grant taker의 여지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taker giver의 장점을 수용하라고 추천하고 있어요. (4)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다 낮는 유형이 apathetic이라고 해요. 이것도 원래 있는 것이고 사실 이것은 병적인 상태죠. 그래서 정신치료적인 대상이겠죠. 이 유형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제가 읽은 내용 범위내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아요.

 

Grant의 기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1) 하나는 giver를 두 유형으로 나누었다는 거에요. 과거엔 giver에 대한 이해가 selfless로만 이해되었죠. 그래서 자기에 대한 배려가 높으면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낮아서 taker가 되고, 자기에 대한 배려가 낮으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높아서 giver가 된다는 것이죠. Grant가 다양하게 실증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대단히 높으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한 배려도 높은 사람이 존재하고 이들이 세속적인 관점에서도 성공적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otherish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이죠. 이렇게 giving을 본다고 하면 저도 Grant에 동의해요. 약간은 조심스러운 데가 있지만(그래서 제가 아래 caveat을 제시), 제가 아무나 무턱대고 giver 포지션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상통해요. 상대방에게 많은 배려도 하지만 자기에게도 배려를 하는 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그래서 caveat를 제시). 대단히 많은 고려들이 이미 전략적으로 이루어져요. Grant책에서도 실험이 등장하는데 머리가 좋은 MBA 학생들이 상대방에게 유리한 deal이 되도록 한다는 거에요. 그럼에도 자기가 손해는 아니라는 거에요. , 상대방에도 좋고 자기한테도 좋은 positive sum 게임의 룰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보통 우리가 게임하면 zero-sum 게임을 상정하는데 그렇게 보이는 양상을 positive sum 게임으로 전환시켜내는 것은 대단히 통찰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는 otherish 유형은 one-shot 게임을 serial games로 보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원래 one-shot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가 은유하듯이 결국 서로를 못믿어서 서로 손해를 보게끔 되어 있죠. 그런데 serial games가 되면 신뢰가 중요한 밑천이 되게 되어서 서로 win-win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게 되어 있어요. otherish는 바로 그때는 손해가 되더라도 결국 long term에서 이익이 되도록 하는 전략 마인드가 몸에 베어 있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반면에 giver중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참 미안하게 여기지만 우리 일상 생활에서 참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착하기만한 미련퉁이', '남좋은 일만 시키고 남는 게 뭐냐'라는 통념상의 비판이 등장하죠. 그리고 본인도 사실은 불만이 누적되는 면이 있어요. '나는 그렇게 많이 남을 도와주었는데 정작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본 척 만 척한다'는 불만을 말하죠. 사람은 누구가 자기가 도와준 것은 크게 기억하고 남이 자기를 도와준 것은 작게 기억하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대충 보면 손해를 보다시피 하면서 남을 도와주는 쪽에 치우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또는 자신의 입장에서도 '도대체 no를 하지 못해서 고민이다'라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Grant가 심리학자답게 냉정하게 이 유형에 대해 비판을 해요. 주체가 불명확한채 타인의 가이드를 따라가는 결핍증세라고요. 저도 사실 giver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가 바로 이 유형 때문이에요. 제가 일전의 소감문에서도 썼듯이 생명체는 자기가 두 발로 서는 게 기본이에요. 이게 된 다음에 남도 도울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생명체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데 쏠리는 것은 얼핏 보면 '착한 사람'으로 칭찬받지만 사실은 주체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죠. KBS '안녕하세요'라고 국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토크쇼가 있는데 가끔 남한테 주기만 하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남한테 다 도와주고 심지어는 자신과 가족은 빚도 짊어지고 지하 방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해산물 판매원은 고객들에게 너무 깎아줘서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은 인터넷 채팅에서 채팅만 한 여자가 어렵다면서 돈을 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주는 거에요.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거에요. 남을 도운 것같지만 냉정하게 보면 남을 더 타락시키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도 다 자립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돕는 게 진정 돕는 거에요. 상대방이 해결할 수 있고 감수할 수 있는 것까지 도와주겠다고 하면 돕는 게 아니고 사실은 해를 끼치는 것이죠. 온정적으로 돕는 게 돕는 게 아니라 때로는 냉정하게 거절하는 게 상대방에도 더 좋고(당시에는 서운하겠지만)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더 행복하게 되요.

 

(2) Grant의 또다른 기여가 사회의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거에요. giver가 중요해지는지 배경을 점점 더 네트워크화된 사회에서 찾고 있어요. 지금은 reputation의 전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거에요. 그래서 giver가 보상을 받는 long term horizon에서 long term이 이제는 대단히 사실은 짧아졌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일이 대단히 상호작용을 많이 요구하는 쪽으로 변한다는 거에요.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의 부상을 예로 들고 있어요. 제조업은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반해서 서비스업은 항상 고객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렇게 자기 할 일만 하던 시대에서 동료, 고객과의 소통의 필요성이 대단히 높아지는 시대에서는 giver가 말한다는 거에요. 저도 동의해요. 사실, 인류는 옛날에 비해서 무지하게 '착해진' 게 사실이에요. 유럽이 불과 300년 전만 해도 정신질환이 있는 여자를 마녀라고 가혹하게 처형했쟎아요. 상대방을 가혹하게 죽이는 전장의 장군이 사실은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아요. 그랬던 시대에서 이제는 대단히 협업적인 사회로 변화가 있고 그래서 협업에 능한 사람에게 대단히 많은 기회가 오고 있죠.

 

이 점은 최근 들어서 여성이 부각되고 있는 흐름과도 맞닿아요.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소통이 능하고 그리고 배려의 심리적 기저가 강하다고 하죠. 6살 정도의 어린이를 관찰하면 여자 아이는 엄마가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지만 남자 아이는 오히려 즐거워할 정도로 남자 아이들이 공감의 능력이 떨어지는 거에요. 옛날 같으면 '남자가 여자같이 찔찔 짜기나 하고' 하면서 정서적 공감을 하는 것을 오히려 유치한 것으로 폄하했죠.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반대로 뒤집어진 거에요.

 

Grant가 짚고 있는 흥미 있는 사례가 있는 데 일종의 'giver coming out'이에요. Grant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단히 giver이고 그러면서도 성공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giver'로 캐릭터가 잡히는 것을 싫어한다는 거에요. 소개된 한 successful giver인 한 매니저는 처음엔 자기 이름을 익명으로 해달라고 했다가 6개월 뒤엔 맘을 바꿨다는 거에요. 익명으로 해달라는 이유는 매니저는 tough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매니저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까 자기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 사실은 giver로 캐릭터가 잡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구요. 그래서 그 매니저는 giving이 갖는 것을 몰래 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해서 사람들이 자신감있게 giver가 되게 하자고 생각한 것이죠.

 

이 내용은 동양사회에서는 약간 의아할 수 있어요. 동양사회가 워낙 유교의 영향이 강해서 군자의 강박관념이 강하죠. 인의예지신이 기본 덕먹으로 강조되구요. 그래서 사실은 동양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giver로 캐릭터가 잡혔으면 하고 바라고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충격을 받고는 하죠. 하지만 이런 동양사회도 그렇게 별반 다르지는 않아요. '사람이 분명해야 한다', '맵고 쓴 게 있어야 한다', '헤프면 못 쓴다', '하나 주면 두 개 더 달라고 한다'라는 통념들에서 보이듯이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Grant가 조사한 경우랑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이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이나 서양이나 협업의 시대에요. 협업을 잘 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이고 그 reputation이 급속하게 퍼져요. 반면에 giver의 설자리는 좁아져요. 요즘 미국의 기업들은 직원을 뽑을 때 그 직원이 그동안 SNS상에서 활동했던 정보들을 조사해주는 서비스기업의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의 문제는 있지만 속이기가 정말 어려워진 거에요. 나쁜 평은 역시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전파됩니다. Grant의 책에서 소개된 스포츠 분야의 한 agent는 선수와 deal을 할 때 항상 자기한테 유리하게 했고 그래서 대단히 이익을 많이 얻었지만, MBA의 코스를 할 때 자기에 대한 평을 듣고서 충격을 받고 태도를 바꾸었다고 해요. ruthless라는 항목에서 자기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자기의 클래스가 아니라 이웃 클래스에서도 그런 평을 받았다는 거에요. 그만큼 나쁜 평의 확산도 빠르다는 것이죠. 그러면 long-term에서 비즈니스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이렇게 Grant가 시대의 흐름도 통찰하고 많은 실제 사례들에 대해 탁견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죠. 그래서 분명히 이 책은 breakthrough가 맞아요. successful giver에 대해서는 outcoming할 명분을 주고, selfless giver에 대해서는 전환을 모색할 다양한 tip을 제공하고 있어요(사회적으로 가치있는 cause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giving과 자기가 할 일의 시간상의 분리를 제안하고 volunteer가 일년에 100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도 말해주고).

 

그런데 역시 Grant giving이라는 것을 화두로 풀어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것이 갖는 어려움, 위험성에 대해서는 덜 다룬다고 보여져요. 위험성을 무시한다는 것을 결코 아니에요. Grant successful giver에 대해 앞의 다섯 장을 할애하고 있다면(Grant는 본문에서 이를 section 1이라고 구분합니다-저는 이 중에서 제1장만 봤어요), 결론 장 전의 3개 장은 위험성을 짚고 있어요. 저는 6장만 보아서 미처 저자의 좌고우면을 미처 못 인지할 가능성도 있기는 해요. 저자가 그런 점까지 인지하고 있다면 전혀 문제 없습니다. 저만 잘 못 이해한 것으로 그만이니까요.

 

Grant도 부분 부분 짚고는 있지만 역시 successful giver가 되기 어렵다는 거에요. 저는 약간의 tip 정도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친구의 고민을 같이 들어주면서 밤 늦게까지 술 마시는 것은 그래도 쉬어요. 이 정도는 그냥 selfless giver인 것이죠. 그런데 정작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을 넘어서서 자기랑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 그 친구가 새롭게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을 얻거나 친구가 처한 상황에서 친구가 최선의 해의 실마리를 얻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거에요. 이게 되려면 giver가 단순히 배려 정도를 넘어서서 인생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해요. Grant의 책에 소개된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는 투자자의 정보를 너무 많이 공개해서 투자를 받는 기업이나 타 경쟁 투자자에게 유리하게끔 하는 손해도 입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받는 기업측이 그 투자자를 찾아요. 왜냐면, 그 투자자랑 같이 얘기를 하면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 지 안목을 얻는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투자자가 다른 가능성으로 소개해주는 경쟁자 투자자에 대한 정보를 포함해서 그 투자자의 방대한 네트워크와 그에 기반한 정보가 크게 도움이 되구요. 이렇게 대단한 네트워크망과 통찰이 있으니까 내부 정보를 솔직하게 노출해서 얻는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거에요.

 

그래서는 successful giver를 목표로 상정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그것이 갖는 장점을 일정부분 흡수하려고 노력은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지지 못하면 그냥 selfless giver  남기 쉽다는 것이죠.

 

Grant giver taker 사이의 유형으로 matcher를 두고 있어요. matcher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서 적당히 균형을 유지한다는 거에요. Grant matcher의 개념은 제시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하고 있어요. 글의 논지상 당연히 예견되죠. 저는 이 matcher가 오히려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matcher가 얼핏 보면 깍정이라고 여겨지기 쉽죠. 그런데 사실은 대단히 공평한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손해보면서까지 남을 돕지는 않겠다는 것이거든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리고 matcher는 계산을 하쟎아요. 대단히 지적인 거에요. matcher의 일부가 successful giver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matcher의 이익/손해의 공간이 단기에서 보다 장기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판단되구요. 이런 matcher의 감각이 결여된 giver는 아마도 successful giver이기는 어려울 거에요. successful giver는 주기만 하는 천사같은 사람이어서는 안되거든요. 비록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스케일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지, 이익과 손해에 둔감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저는 taker도 괜챦다고 봐요. 앞서 짚었듯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게 기본이에요. 이게 훈련이 된 다음에 타인의 이익과 균형을 맞추는 matcher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고 나서 win-win 게임전략을 갖추게 되면 successful giver가 되는 것이죠. 앞서 소개한 스포츠 에이전트가 successful giver로 전환할 수 있었던 동력도 사실은 그가 taker였기 때문이에요. 이익, 손해를 구별할 줄 알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매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최적화 공간의 차원을 더 넓히니까 시야가 넓어진 것이죠.

 

반면에 자기 이익을 못 챙기는 착한 사람에게 이익/손해의 개념을 갖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워요. no 하지를 못하는 사람에게 no 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이렇게 냉정함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은 successful giver가 되지 못하고 그냥 selfless giver가 되버리기 쉬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착한 사람'이라는 허망한 자기만족을 갖고 사는 것이죠. 본인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좋지 않아요. 제가 늘 강조하는 바인데 '착한 사람'인 것은 되게 쉬어요. 적어도 그 순간에는 칭찬도 받고 자기 마음에도 편하구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기는 어려워요. 상당한 전략성이 몸에 배여야 하고 인생에 대한 경험도 쌓여야 해요.

 

냉정한 현실주의의 시각이 결여된 채 혹시라도 '좋은 사람'의 유행을 만들까봐 저야 우려하는 것이죠. 현실주의의 땅에 제대로 뿌리바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giver 유행은 좋다고 여겨지구요.

 

Grant가 글을 대단히 잘 씁니다. 상당히 방대한 학술적 기초가 있고 그것을 유효적절하게 아주 쉽게 활용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소설가의 문필력이 있어요. Grant giver로 소개하는 어쩌면 바보같은 Sam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한 참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는 그가 Lincoln이다라는 반전을 보여주네요. 대단히 박진감 있고 재밌었어요. 전반적으로 '학술을 쉽게 대중에게 설명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지식들 Grant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소설 같아요. 요즘 논문으로는 한계가 있고 역시 대중적인 글을 써야 인지도가 확 올라가는데 이런 쪽으로 필력이 있는 사람이 뜨는 것 같아요. Grant뿐만 아니라 소설의 전개방식을 빌리는 필자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직까지 본 바에 의하면 Grant가 가장 탁월한 프론티어에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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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Grant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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