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0. 목)
정말 모처럼 영화 감상문 쓰게 됩니다.
원래의 제목은 <이창동이 있어서 행복하다 2>와 같이 적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사연은 예전에 이창동이 문화관광부 장관을 하게 되었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이창동이 있어서 행복하다>란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쓴 적이 있었거든요 (아래 첨부).....소탈하고 탈권위주의적이며 성찰적인 인물이 그 반대의 이미지로 다가온 장관직을 맡은 것, 그렇게 시대가 변한 것에 대한 저의 '행복감'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그렇게 썩 다가오지는 않네요......아마도 '탈권위주의'라는 것이 더이상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한국사회에 절실한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겠죠........긍정적인 측면에서란, 이미 '탈권위주의'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겠구요.....부정적인 측면이란, 권위주의냐 아니냐를 따지기에는 한국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팍팍해진 것이겠죠......
이 부정적인 측면이, 저로 하여금 <행복하다 2>라는 명쾌하고 낙관적인 제목을 쓰기 어렵게 만들게 하기도 하고.....또 영화를 관통하는 사회배경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창동은 참 가슴쓰리고 고통스럽지만, 한국 사람들의 팍팍한 삶을 영화에 담아냅니다......그래서 비록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그리고 그만큼이라도 말할 수 있게 하는 이창동이 고맙죠......... 제가 <행복하다> 글 쓸 때 이창동의 성찰하는 지식인, 과장하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 묵직한 지식인의 모습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수 년이 흘러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지식인이 흔하지 않쟎아요....... 1954년 생 (저랑 띠동갑이네요)이면, 이제 환갑이 가까운 나이인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아지면, 오히려 가벼워지는 사람들......나이가 많은데도 오히려 가볍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쟎아요........... 그래서 믿고 따르고 싶은 '어른' 또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의 '선생'이 드물구요.........
이창동의 영화는 이번 영화까지 5편밖에 되지 않아서 그의 영화를 다 보았다고 해서 특별히 그의 팬이라고 말할 게 없죠.......<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그리고 장관하면서 시간간격이 넓어져서 <밀양>(2007)과 어제 개봉한 <시> 이렇게 다섯편입니다........워낙 진중한 사람이라서 다작도 아니네요.....생각이 충분히 무르익고 삭여지면 그 결과가 영화로 하나씩 만들어지는군요....... <밀양> 보고 나서도 이창동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이미 브랜드를 갖춘 성공한 감독이 더군다나 장관도 해서 어깨도 힘이 들어갈만한데도.......여전히 그의 영화는 '힘빠져 쳐진 어깨'의 느낌에 가깝죠........
이창동은 항상 어둡고 씁쓸한 영화를 남기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오아시스>는 가장 환상적이고 낙관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그는 예술가의 촉수는 사회의 흐름을 아마도 그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내면화하게 하는 듯합니다....... 오아시스가 만들어지고 개봉한 때는 한국이 낙관적이었던 때 맞죠......... 그리고 오랫만에 복귀해서 만든 <밀양>에서 낙관의 흔적은 많이 사라진 듯해서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의 <시>는 더더욱 그러한 듯합니다......... 별로 낙관적일만한 게 없는 한국인의 삶을 참으로 건조하게 그래서 냉정하게......그래서, 사실은 더 역설적으로 sympathetic하게 그려냅니다........ 세상이 낙관적이지 못하고 고통이 챗바퀴 돌듯이 계속된다면, 그렇게 담담하게 그려주는게 맞죠......비록 그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도 괴롭겠지만, 그 괴로움을 감수하는게 정직하고 용기있는 작가겠죠.......생활고로 한계상황에 직면하는 사람들을 건조하게 담아내는 다큐를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죠........ 하지만, 필요하죠......그리고 그만큼 용기가 필요하고, 그 직업정신에 투철한 것이죠...........
제가 지금까지....비관, 고통, '팍팍', 생활고 같은 단어들을 현실에 배치하고,..... 낭만 같은 단어들은 비현실에 배치하게 되는데.......이 창동 역시 <시>에서 이러한 대조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끌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윤정희 분)인 65세 전후의 할머니는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합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소녀같은 감성의 세계와.....파출부/조손가정/이혼한딸 과 같은 결코 가까이 두고 싶은 현실의 세계에 약간은 정신분열증처럼 위태롭게 그래서 영화를 보는 사람도 아주 불편하게 걸쳐 있습니다........
주인공이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고 한 편의 시를 써야 하는 숙제를 안죠....... 그는 문화센터에서 배워보기도 하고, 시 동호회의 낭송회에도 참석하고, 회식에도 참석하는데......그가 생각하는 '시'에서도 균열에 직면합니다......문화센터의 강사(실제 김용택이 분한 김용탁 시인)는 아름답고 사물에 천착하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그러한 보통 '순수한 시'를 가르칩니다.......그런데 그것에 주인공은 참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시낭송회에 참석하면, '순수한 시'도 있지만, 시는 좀 말하고 오히려 음담패설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회식 자리에 조우한 '김용탁'과 그가 아끼는 후배는 참 대조적이죠.....김용탁이 '순수한 자연'이라면, 그의 후배는 술에 잔뜩 취해 시를 조롱하는 말 몇 마디를 남깁니다.........
개인이 다소 세상과 무관할 때는 세계가 나름 잘 굴러갈 때죠....... 그때 개인은 많은 개인적인 낭만과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죠......그러나 세상이 삼엄할 때는 그런 개인적 취향은 짓밟히기 쉽죠....... 주인공이 직면한 상황이 그렇습니다.......아마 남편이 있을 때까지는 유보하게 세상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무난하고 평범한 (그래서 이렇게 살기는 사실 쉽지 않죠....무난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죠) 삶을 살아갔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남편도 죽고......... 10평대의 작은 아파트에 남겨졌을 텐데.....그나마, 딸이 이혼하면서 외손자를 양육하면서 살아갑니다.......아마, 딸 역시 삶이 고단하겠죠..........그래도 나름대로,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문화센터에 등록도 하려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모질게 한꺼번에 그나마 아슬아슬했던 삶을 엄습합니다..........치매 진단을 받았구요......그것만으로도 아찔할 텐데, 그만, 중학생 손자가.....자살한 같은 학교 소녀가 일기장에 남긴 '성폭력했던 아이들' 중 하나가 됩니다....... 비틀어진 시도 싫어했던 사람인데, 그만, '순수'한 삶은 파탄납니다.........합의금 500만원이라는 무거운 현실의 짐이 더해지구요.......
이창동이 지독한 사람이라는 것은...... 냉정하게도 현실의 고통을 가감없이 드러내죠........그것도 담백하게.......... 이 영화가 무겁게 느껴지게 하는 것은 주인공이 직면한 고통이 그의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 것입니다........ 조손 가정에 손자는 파편화된 인격체이구요.......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살한 중학생 소녀 역시, 소녀의 순수함을 현실에 의해 침탈당한 것이죠...영화는 몇 가지 장치들을 통해 윤정희=자살한 소녀와 동일한 것임을 애써 강조합니다.....이창동이 의식적으로 그가 보는 비관적 전망을 드러내는 것이죠.....강간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개인 또는 가정에 엄습하는 사회의 공격입니다.......사회가 개인과 가정을 보호해주기 보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하는 것이죠......지금 한국의 사회가 그만큼 절박하고 가혹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내몰려본 심정을 경험한 사람은 사회가 얼마나 낯설고 차갑고 무자비한......그러면서도 담담한 것인지를 절감하죠......... 제가 좋아하는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세상은 '무덤덤하게' 자전거를 잃은 전후 이탈리아의 한 가장을 내치죠..........
저 역시 꽤나 낙관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향후 몇 년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죠.....설령 1인당 GDP가 훨씬 더 커지더라도 그 과정은 개인이나 가정이 살림이 늘어나고 윤택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이 전개되고, 더 빠빡하게 살아야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그래도 1인당 GDP가 늘어나면 낫겠죠......만일에 한국의 주요 산업들마저 구멍이 뚫리면, 그마저도 어려울 수 있겠죠.........그리 되면, 개인이나 가정에 가해지는 사회의 침탈은 엄청나겠죠........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낙관적인 몇십 년을 살아오는 덕에 나름 안일해지고 연약해진 (윤정희가 분한 주인공 같은) 한국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되겠죠.........
이창동은 지독하게 완벽주의적인 사람입니다......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이는 장면들과 대사들이지만, 역으로 저는 장면들과 대사들이 영화전체에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배치되는지에 경탄합니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버릴 데가 없죠.....가감해서도 안되고.........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배경이 되는 도시는 이천 근처의 좀더 작은 도농 마을입니다........ 남한강 근처인 듯하구요.......한국의 도농마을이 썩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쟎아요.......도시이기에는 어수선하고.....농촌이기에는 이미 농촌 공동체는 붕괴했구요.......소녀의 죽음 때문에 모이게 된 '아마도 가해자' 학생의 부모들의 직업도 불안한 도농 마을의 자영업들이죠......노래방, 부동산중개업......... 지난 번 <밀양>도 이러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죠........영화의 주배경인 마을만 봐도 균열적이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죠.............. 그가 의식했을 수도 있지만, 또 많은 부분은 그도 의식하지 못한 채 배경과 대사와 인물들을 설정하겠죠......시대의 흐름에 탁월한 감수성은 이제 영화라는 무의식적 표현으로 물질화되는 것이겠죠........... 사회를 학문으로 접근하는게 사회과학인데, 이렇듯 탁월한 감수성의 소유자는 사회과학을 앞서서 또는 사회과학자의 형애화된 현실인식을 뛰어넘어 사회를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모처럼 영화평 남기게 해준 이창동이 고맙죠.....그는 무게감이 더해지는 영원한 청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작가는 나름대로의 프레임이 있어서 장점이지만 그 프레임에 같히게 되면서 고갈되죠........그래서....제가 프레임에 같히지 않는 작가를 소중하게 생각하구요...... 그런 감독으로 이준익 감독도 생각했는데, <님은 먼 곳에>에서 약간은 흥행에 많이 천착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근 <바람을 벗어난 구름처럼>에서는 더욱 그런 듯합니다....... 그 역시 예민한 작가죠.....하지만 <바람을...>에서 '허무한 인생'을 담기 보다는 '허무주의'같은 작가의 코드를 담는데 마음이 급한 듯합니다.....그러면서도 미쟝센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그래서 <바람을 ...> 보고 나서는 '좋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한 사람을 잃는 것 같아서요.......... 여전히 이창동은 그 자리에 있네요.......참 쉽지 않은데요.......변하는게 어렵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참 어렵쟎아요........어려운 시대에 그래도 이창동이 있으니까 좋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