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도 송시열 류의 형식적인 예절에서는 벗어나는 게 시대 흐름에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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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죠. 이승우가 물병을 걷어차면서 출전 못한 화풀이를 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폭언/폭행한 것도 아니고 위협이나 피해준것도 없거든요. 굳이 피해를 본 대상은 물병에 불과하구요.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구체적인 피해가 없다면 그런 정도로 자기 분풀이를 표현하는 게 본인의 건강에 좋아요. 3경기 연속 벤치면 당연히 속상할텐데 그것도 표현을 못하면 사람이 너무 '착해보이기' 콤플렉스에 빠져요. 요즘은 덜 relevant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 가정에서 며느리와 시부모의 갈등(사실은 더 일반적인 가족 갈등)에서 며느리가 일방적으로 힘들게 되는 것도 그 며느리가 바로 대들지 못해서 그런 것이거든요. 바로 대들면 누구나 다 움찔하게 되어 있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요. 그리고 그렇게 대드는 게 사실은 상대방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니 '수고스럽더라도'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거에요. 아주 예민한 사람 아니면 상대방이 바로 대들지 않으면 그냥 '내심 수긍'하는 것으로 착각해버려요.
'우는 사람 떡 하는 더준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에요. 자기 불만을 사람들이 말 안해도 알아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각자 자기 불만도 감당하기가 힘들거든요. 이승우가 그런 정도로 불만 표시하면서 은근히 감독에게 '당신이 제대로 선수 선발을 하고 있냐?'고 압박을 하는 것도 선수로서는 충분히 권리라고 할 수 있어요. 정작 유럽 출신 감독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안쓰거든요. 이승우에게 어깨 두드렸구요. 유럽출신 감독이라면 그런 선수의 전투적인 면을 높게 평가할 수가 있는 거에요. 한국이 유교문화로 인해서 자꾸 '착한 아이' 강박을 부여하니 한국인들이 권리를 제대로 못 찾는 면이 대단히 많아요. 공격이나 불쾌한 일에 닥쳤을 때 바로 화를 내거나 대응을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데 '착한 아이' 강박이 그것을 가로막거든요. 바로 대응했을 때는 증거도 확실하고 주변정황도 확실하지만 그 타이밍을 넘기면 정말 문제제기를 하는 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한국인들은 '화내는' 훈련을 받아야 해요. 화내는 것은 자연발생적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화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화를 못 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에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서양이라고 아예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양은 동양처럼 문화적 억압이 강하지는 않거든요. 한국은 '어른 말 잘 들어야지' 하면서 원천적으로 아이들이 confrontation을 하는 것을 막아버리거든요.
제가 한국에서 글쓰기가 판타지라고 하는 게 dialogue의 인프라가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dialogue는 그 즉자성을 생명으로 하거든요. 비록 거칠어도 거기서 쏟아낼 것은 다 쏟아내는 게 가장 나중에 깔끔하죠. 앞에서는 화내는 사람은 의외로 그렇게 화를 낸 게 끝인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앞에서 화를 안 내는데 뭔가 있는 것 같다 싶으면 두고두고 부담이 되거든요. 트럼프가 적나라하기는 하지만 기자들에게 거친 confrontation을 하는 게 뒤끝이 없으니 깔끔하거든요. 앞에서 그렇게 공경하고 혹시 뒤에서 인사 등에 반영하기는 어려운 것이거든요. 이렇게 dialogue는 즉자적이고 뒤끝이 없고 그리고 수평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 수평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dialogue가 안되고 dialogue를 근간으로 하는 글쓰기가 될 수가 없는 거에요. 한국인 식자들이 쓰는 글은 지루하고 일방적인데 그 이유가 dialogue가 깔리지를 않고 글쓴이가 일방적으로 써서 그래요. 반면에 서구의 식자들의 글쓰기는 대화를 하는 느낌의 긴장감을 갖게 하는데 그것은 글쓸 때 이미 dialogue를 시뮬레이션해서 쓰니 그런 것이구요.
전하는 말에, 이황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두 젊은이가 찾아왔는데 이황을 기다렸어요. 마침 여름이라서 너무 더웠고 그래서 한 명은 옷을 가벼운 체로 입고 편하게 기다렸는데, 다른 한 명은 사극에서 나오는 말대로 '의관정제'를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고 해요. 이황이 나중에 보고서 의관정제를 한 젊은이는 제자로 안 받았다고 해요.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게 이유였어요. 나중에 제자가 안된 젊은이가 사화를 일으켰다나 어땠다나 그래요. 전하는 말이니 믿거나 말거나인데, 메시지는 대단히 참신하죠. 이황하면 무지하게 '예의'를 지켰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황 때만 해도 조선사회가 성리학 원리주의가 원칙적인 수준이었지 나중에 송시열 때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으로서의 '예'에 집착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황은 성리학의 이상적인 면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어요. 더워서 옷을 가볍게 입고 싶은 것은 마음의 자연스러우는 흐름이거든요. 억지로 옷을 입고 버티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구요. 옷을 어떻게 입냐를 놓고 집요하게 따진 사람은 송시열의 예론이고 장례식 옷차림 문제였죠. 송시열은 다른 의도가 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왕도 사가랑 다를 게 없다면서 사실상 왕을 격하시킨 것이었죠. 이게 무리한 '예 보편주의'였던 것이고 왕을 사대부의 하나로 보는 비현실적인 사고였던 것이고 원리주의적 극단이었던 것이죠.
유교예절하면 '신독'이니 하면서 혼자 있을 때 잘하라고 하고 이것서구 중세에도 그랬죠. 그런데 신독이라는 말은 사실 논어에 있지는 않죠. 대학/중용에 있다고 하는데 논어는 재기발랄하지만 대학/중용은 추상적이고 꼰대스러운 면이 있거든요. '신독'도 디게 고지식한 주장이죠. 사람이 혼자 있을 때라도 좀 널부러지고 마음속에 말이라도 해야 풀리지 혼자서도 도닦고 있으라고 하면 그 스트레스를 무슨 수로 감당해요. 남의 뒷말 하라고 하지 말라고도 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그럴 수 있으면 괜챦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말이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려요. 앞말은 위계도 있고 하니 그렇게 풀기가 어려운 것이고 무리가 많이 따르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뒷말이라도 실컷 하는 재미가 있어야죠.
---인용
사실 이번 물병 논란은 유럽이라면 논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매우 흔하기 때문.
하지만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승우의 행동을 두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이***은 “국가대표인데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은 “지금 좀 힘들다고 다 내색하면 깨지는 것은 팀워크다. 후보들 누가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샤***도 “이건 욕먹을 행동이 분명히 맞다. 기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 답답한 마음은 이해 가지만, 그건 출장 기회가 적은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승우를 격려하는 팬들도 많았다. 위***은 “물론 많이 힘들겠지만, 잘 이겨낼 때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릴 거다. 이승우의 출전을 바라는 많은 분들이 있음을 믿고 힘내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tr***은 “화 날만 하다. 소속팀에서 겨우 입지 다져가고 있는데 차출하더니 한 경기도 못 뛰게 하는 건 조금 아닌 것 같다”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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