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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쯤 되면 직업 내지는 그 준비를 하는 게 맞아요

[사춘기 되면 직업 내지는 준비를 하는 맞아요]

(2017.4.2 작성) 

아래 로저스라는 3 투자자(한국에서 클리쉐로 자주 쓰이는 O 인물론이죠) 명이 자녀가 13살이 되면 직업을 가지고 직업 하나로 농업을 강력하게 추천하죠. 농업은 인류가 있는 필요한데 지금의 농업인구가 고령화되어 있어 젊은 인구의 진입의 기회가 많고 또한 그만큼 필요하다는 거에요. 최근 한국에서도 인구학이 전공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딸에게 농부직업을 권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근거가 충분한 것이죠. 그리고 농업도 상당 정도 인공지능이 도입되고 보다 섬세한 기계화가 도입되면 농업이 주는 이미지인 '허리가 끊어질 듯한 지독한 육체노동' 어느 정도는 극복될 거에요.

 

로저서는 농업을 한다는 것보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각을 일찍 하라는 의미도 있어서 가게에서 알바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고 있어요. 여기서 로저서의 의도를 제가 일반화본다면, 인간에게 있어 고유한 생산과 교환의 자질을 환기시켜야 하는 것이죠. 농업은 가장 직관적인 생산이고 누구나 있죠.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교환(상업) 재능도 그러해요. 농사짓던 사람들이 5일장에 나와서 농사지은 것들을 파는 행위는 상행위이죠. 이렇게 생산과 교환은 누구나 알고 그리고 있는 행위에요.

 

그런데, 아래 기사에서 기자가 인터뷰 질문에서도 드러나듯이 '학교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들도 하냐?'라는 의문점이 있죠.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반대로 과연 학교가 그런 인간의 자연스러운 자질(생산과 교환) 억압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때이죠. 10대때부터 자연적 성향에 충실하게 발전시킬 있는 인간의 보편적 재능을 학교가 오히려 가로막고 그것을 특수한 활동으로 치부시키게 하고 멀어지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비즈니스라는 사회의 분야로 여기게 만들구요. 이게 근대사회의 노동분업과 그에 충실한 학교라는 제도의 결합때문이죠. 인간은 생산/교환이라는 본원적인 entrepreneur적인 재능이 누구에게나 있는데, 오히려 학교와 기존노동분업은 그것을 퇴보시키게 하고 employee 키우는 것이죠. 고용이 힘든 시대에 employee 되는 열망이 강하겠지만 사실 employee 인간의 entrepreneurship 거세된 존재이죠.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야마 생계가 확보된다는 것은 무지하게 불쌍한 존재인 것이거든요. 근대의 노동분업과 학교교육제도가 인간을 그렇게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그렇게 해서 생계라도 보장해주면 다행이고 일종의 타협이겠지만 실은 이제 그것도 못해주는 것이거든요. 기껏 그런 취업과 그것을 위한 학교교육 제도로 아이들을 키워놓고 정작 '일자리' 없는 무능력과 부조리가 지금의 경제체제인 것이구요. 비정규직이 많아서 문제라는 것은 기존 조직이 무능하다는 것이거든요. 사람을 정규직으로 오랫동안 데리고 있겠다는 것이 기존 조직의 가오이구요. 예전에 고성장시기에는 정말 그랬거든요.

 

취업을 수도 있는데, 그게 오직 유일한 길이 아니라, ' 혼자서도 먹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긴밀하게 얽혀서 일하는 시스템에서도 일해줄 '하는 것이어야 취업하는 사람도 그리고 시스템도 득이 있는 시대에요. 직장을 나서면 당장 생계가 난망한 사람들은 기존의 조직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정도 의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기여하는 것이구요.

 

제가 최근에 대단히 흥미로운 개념을 들었는데, full unemployment 개념이에요. 타이핑 에러가 아닐까 싶을 텐데, 각자가 피고용인으로서가 아닐 독립된 생산/교환 주체로서 재조명하자는 의미겠죠. 교육은 사춘기 즈음이 되면 이런 독립된 주체가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구요. 각자 취향이나 조건에 맞춰서 먹고 것을 가르치는 것이죠. 제가 최근에 친구랑 대화하면서 친구도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런 중요한 것을 학교가 가르치지 않으면서 '학문기초'라는 따로 있는 것처럼 신비화시킨다는 것이죠. 그런 기초를 하면 나중에 먹고 살아가는 필요한 것은 알아서 되는 것처럼 간주하구요. 그런데 먹고 사는 , 부모로서 역할하는 , 인간관계를 유연하게 가져가는 등이 보다 중요한데 그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죠. 그리고 이제 '학문기초'라고 하는 것들은 오히려 흔하게 인터넷에 널려있죠. 그리고 필요하면 '학원'에서 가르쳐주기도 하구요. 논란도 일으키지만 국사 강사인 설민석은 얼마나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쳐주는지요. 지금 MOOC 시대에는 그런 사람의 강의를 누구가 흔하게 접할 있는 시대이죠.

 

그리고 과연 인간이 '기초'라는 것에서 사고가 출발하는지도 극히 의심스럽죠. 오히려 그런 사고를 하는 사람은 소수의 범생이들이고 다수는 일을 하다가 필요하면 기초적인 것을 갖다 쓰는 쪽이죠. 기초에서 출발해서 응용을 한다는 선형적인 사고가 오히려 중세의 교조적 신학교육의 모델이 대중화되버린 것이라고 있죠. 인간에게는 기초와 응용이라는 선형적인 사고보다는 부딪치면서 배워가는 learning by doing이나 tinkering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학습이에요. 이렇게 하면 왠만한 모든 사람이 학습을 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못했어도 직업을 가지고 하면서 꾸준히 하다보면 나름 직업에서 일가를 이루는 그래서 그런 것이죠. 그런데 학교교육이 '기초'라는 있다는 선입견에서 오히려 기초부터 출발한 지리한 과정을 감수하는 소수의 범생이들에게 편향된 교육조건이 되버린 셈이죠.

 

인생이 길의 설정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시대에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20&aid=0003054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