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공문서가 수신, 발신이 명료한 편지글 양식이고 한국정부의 문서는 그게 결여되어 있습니다]
앞서서 제가 베조스가 말한 바 편지글을 작성하고 이것을 읽는 게 소통의 기본이라고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아래 링크). 댓글을 달면서 조금 부연을 하게 되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편지글 형식은 미국, 유럽, 그리고 조선시대도 그렇게 하는 바인데 현대 한국에서 오히려 모호하고 논리성이 박약한 개조식문서로 그런 형식의 PPT를 정부나 기업에서 쓴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소통수준이 박약하고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죠. 부연하기 위해서 너무 손쉽게 검색해보니 최근에 백악관이 국회에 보고서를 보낸 게 있는데 이것이 역시 당연하게도 편지글이어서 요것으로 한국의 문서양식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 모델로 적절해보여서 아래에 설명합니다.
https://www.facebook.com/KIM.Seokhyeon.ik/posts/2016936208318211
미국의 대통령(백악관)이 국회에 economic report를 보내고 그 report 의 근거는 economic council에서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white house가 의회에 보내는데 사인을 보니 트럼프의 사인 같습니다. 이게 10쪽인데 개조식은 없고 불리틴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보고서는 문단마다 각각 문단으로 구분되어야 하는 메시지가 담기는데 이것은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문단의 취지가 그러합니다. 사실 문단이라는 것 자체가 서식상에서 구분되는데 그 문단의 주제가 개조식에서 네모나 동그라미에 해당되는 구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단의 세부내용이 개조식에서 작대기에 해당하는 것일 테구요. 이 편지글에서 중요한 것은 수신자가 누구인지 발신자가 누구인지가 분명히 표시되어 있고 발신자의 서명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문 편지에서의 기본 양식이죠. 영문편지에서는 왼편에 수신자(Dear 또는 ATTN ..) 그리고 오른편 상단에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해서 문서의 책임이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Economic Council이 붙인 1쪽짜리 편지에서 보이죠. 미국은 보고서를 쓰더라도 보고서의 맨 앞에 이렇게 편지글로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보고서 작성 책임자가 서명을 합니다. 이게 너무나도 분명한 양식이고 변화가 없습니다.
한국의 정부 보고서는 놀랍게도 발신자와 수신자가 다 불명확합니다. 발신자는 부처이름이나 여러 부처 이름이 나와 있거나, 부처 합동, 부처 TF와 같은 지극히 불분명한 발신이고 작성자입니다. 이게 다 면피하기 좋은 것이죠. 그리고 설명 정부 부처의 문건이라고 해도 그 문건의 작성자가 나와줘야 하는데 절대 안 나옵니다. 정부부처라는 추상이 문서를 작성할 수는 없죠. 누군가 그 문서를 작성한 사람 또는 authorship을 가진 사람이 명기되어야 하는데 한국 정부의 문서에는 그게 없습니다. authorship이라는 것은 명예이기도 하지만 책임이기도 하죠. 황우석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 올린 사람들이 처음엔 영광이었으나 나중에 처한 곤경이 그것을 잘 드러내줍니다. 한국의 정부의 문서에는 대신에 '담당 연락처'가 적혀 있는데, 아무 의미가 없죠. 이것은 편지를 보낸 발신자는 불명확한데 문서수발을 한 secretary의 이름은 있는 셈이거든요. 한국은 이렇게 개조식의 모호한 문서도 문제지만 발신자와 수신자도 불명료합니다. 발신자의 불명료성 문제 말고 특히 편지글과 달리 수신자의 불명료성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소개한 문서에서 수신자는 국회로 되어 있거든요.수신자가 명료하면 내용도 그만큼 한정되고 명료해집니다. 그런데 수신자가 불명료하면 내용도 무책임해지죠. 편지글이 요구하는 발신자, 수신자, 그리고 적절한 문단들이 얼마나 내용을 분명하게 한정해주는 장점인지를 알 수 있죠.
자 그럼 여기에서 편지글로 되어 있는 글에서 메시지를 포착하는 책임은 누구이냐면 일차적으로는 글쓴 사람인데 앞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각 문단에서 각 문단이 의미하는 바를 구분해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문단쓰기 훈련을 안 해서 잘 못하는 바입니다.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3개 문단 쓰기와 같은 작문훈련을 하면서 문단이 왜 문단인지를 몸에 익히게 됩니다. 자 다음으로는 수용자 쪽인데 이런 편지를 읽고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역시 기본 literacy입니다. 그래서 미국교육은 이것을 학교 다닐 때 시키는 것입니다. 굳이 하이라이트해주거나 머리말을 안 끄집어내줬다고 해서 못 이해한다면 그것은 literacy가 떨어지는 셈이 됩니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인 지적 소통을 해야 한다면 이게 기본인 셈이죠. 버핏은 연례회의 하면서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내쟎아요. 그리고 주주들은 그 편지를 읽구요. 이게 미국의 소통의 일상인 것이죠.
혹시 가독성을 위해서 좀 더 친철한다면 OECD가 보고서 각 문단에 번호를 붙입니다. 문단이 각각 고유한 존재의의를 갖도록 강조하고 혹시 찾아보기도 좋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문단 왼쪽 여백에 간단히 헤드라인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게 개조식에서 네모나 동그라미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조금 더 친절하냐의 정도이지 각 문단 자체는 일반적인 서식을 따라갑니다. 유럽이나 미국이 이게 소통의 기본이고, 그리고 조선시대도 그러했는데, 요즘 한국에서 소위 개조식이어야 소통이 명료하다고 이해되는 것은 디게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한국의 소통은 누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가 불명료하거든요. 이런 불명료함이라는 게 한국에서 거대한 소통비용을 유발하는 것이구요.
https://www.whitehouse.gov/wp-content/uploads/2018/02/ERP_2018_Final-FINAL.pdf
https://www.facebook.com/KIM.Seokhyeon.ik/posts/2016936208318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