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7)
늦게까지 하는 전시회가 저한테는 고맙습니다. 휴일에 집에 있으면 게을러집니다. 그러다가 4시쯤 되어서 어디라도 가려면, 저녁에도 개방이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는 5월8일부터 7월4일까지 약 2달간 합니다. 제가 특별하게 미술에 조예가 있지는 않지만, 소일 거리로 보는 것으로는 미술관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회는 무엇보다도 전시회의 제목이 매력적이었구요.....그리고 제가 최근에 관심이 많이 가는 강익중이 참여했더라구요.....이 정도면 게으른 사람도 발걸음을 할만하죠....
제목이 매력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과학-예술 융합프로젝트로서의 전시회가 있었어요. 제가 전시회를 가지는 않았고 그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여러 작품 중에 참 인상적이었던 게 '미래'라는 주제가 있었어요. 비디오아트인데, 정작 내용은 달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통상 미래하면, 사이보그 같은 상상....이제는 너무 통념화해서 별로 새롭지도 않은 상상을 제시하죠....하지만, 그 작가는 미래에도 달은 지금처럼 보일것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시간의 무구함을 얘기하죠.....우리가 앙바둥거리면서 시간을 '소비하는'게 참 덧없는 짓일 수 있음을 통찰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회도 비슷한 통찰이 있습니다..... 시간이라고 하면 변하고 빠르다는 통념을 갖는데 반해, 반복되고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물처럼 시간을 보고 있더군요......저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통찰이 참 신선하다고 느낍니다.......보통 사람들이 통념과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것을 전복할 수 있는 용기와 시도를 하죠........인간은 살아가면서 끝없이 개념을 만들지만, 그렇게 만들자마자 고정관념이 되면서 인간에게는 억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라캉에 따르면 기의는 끝없이 기표를 미끌어지죠).... 예술가들은 상당히 선구적으로 이 고정관념을 파괴하고.....인간과 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면 또는 본질적인 면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예술가들은 참 가학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고정관념에 편승해서 편하게 살기 보다는 그것을 뒤집어야 하니까요.....그래서 고통을 감수해주는 정직함과 순수함이 있어야 예술가가 될 수 있겠지요.....
강익중은 달항아리 소재로 두 작품을 전시합니다......하나는 벽화같은 것인데, 달항아리가 그려져 있구요.....다른 하나는 바닥에 달항리들이 물처럼 있고, 위에는 다리를 짚신의 자국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그리고 바로 옆 벽에는 물결흐름같은 것을 작은 나무조각들로 구현합니다.....그는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작품화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듯합니다....각각은 별게 아닌 듯한데 모아놓으면 신비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이번에 상하이 엑스포의 한국전시관 외관도 그의 작품입니다.)....제가 어디선가 본 것 같아요......강익중이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듯합니다......광화문공사의 가림막도 '광화문에 뜬 달'로 알고 있습니다......국립중앙박물관장 최광식이 TV에서 출연했을 때 설명을 하던데 달항아리의 단순한 미학 거기에 약간의 추상적인 선 몇 가락은 너무나도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보더군요.......강익중은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난해하지 않고 그리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잘 구현한다 싶습니다.....
다른 작가로 인상적이었던 게 김효득의 <흔들림, 문득-공간을 느끼다>입니다......연못같은 곳 위에 한지들을 겹겹히 쌓았는데, 물 흐름이 한지에 반사됩니다.......조용한 냇물에 앉아서 집중하면, 늘 똑같다고 생각하기 쉬운 주위의 자연물도 나름대로 운동하는 아름다룬 느낌을 경험하는데, 그런 느낌이 듭니다.......그리고 작가의 이름을 잊었는데 <insomnia>라는 작품도 블라인드에 가려진 햇빛이 블라인드가 흔들릴 때마다 불안한 듯 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을 재현합니다......(저도 블라인드와 블라인드가 만들어내는 가려지고 열리는 풍광이 매력적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저는 추상적인 미술이 과연 추상적이라고 부르는게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저는 오히려 굉장히 구체적이고 원초적인 우리의 이미지들을 재현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다만, 우리가 통념화된 일상 생활에 젖어 살아가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치는 그런 것들이죠.......
전시를 하고 있는 석조전의 별관을 나서는 느낌은 독특합니다.....시간여행을 해야 하는 찰나의 상전이같은 느낌이죠......서양식 건물을 나서는 순간 바로 정면은 그윽한 중화전입니다.....덕수궁이 현대와 과거를 응축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덕수궁은 시간이 닫혀진 곧 같기도 합니다.......정문은 잃어벼려서, 중화전-중화문 앞은 그냥 벽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과거의 시간여행을 왔는데, 그만, 돌아가지 못하는 느낌 같은게 들죠.......그래서 더 덕수궁은 옛스럽게 다가옵니다.......정문도 잃어버리고 그래서 동문(대한문=대안문)을 거쳐서 중화전의 측면을 보면서 진입해야 하는 조선의 비극이 더 극적으로 재현되구요........어떤 면에서는 원형도 경운궁이라는 이름도 잃어버린 덕수궁이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한 궁궐들보다도 더 실재적입니다.....많은 복잡한 상념과 비감(悲感)을 머금고 있죠.......그래서 덕수궁과 덕수궁 미술관은 참 궁합이 맞습니다........덕수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화문-덕수궁-숭례문-서울역-남영역-삼각지-한강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주변 풍광에 애착이 많이 갑니다......남영역에서 가까운 후암동에도 몇 년 살았기도 하구요.....아기자기한 남산을 끼고 돌아가다, 시원스러운 한강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그 길의 큰 윤곽은 아직도 옛스럽죠.......삼각지의 고가도로와 한강대교앞의 고가도로가 없어져서 시야는 더 시원스럽구요.....제가 원래 강북에 어릴 적 추억들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길이 내치기 보다는 담아준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반면에 강남의 테헤란로나 양재대로는 참 정붙이기가 어렵습니다......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한강을 건너서 봉천고개-관악산 입구까지도 참 정이 가는데, 아쉽게도 봉천고개의 양안은 고층아파트 단지에 의해 점령되어 휑하고, 관악산중턱의 권위주의적인 서울대 공대 건물도 항상 마음에 질곡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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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공식 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8일부터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展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