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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프리뷰 - 고전과 근대

(2011.8.9)

지난 번에 KBS특강에서 고미숙의 뉴웨이브로 해석한 박지원과 정약용에 대한 강의를 본 게 계기였습니다(그때 쓴 짧은 글은 뒤에). 신선한 인물을 한 명 접하게 된 반가움이 있었죠. 그러다가 고미숙이 호모 쿵푸스라는 책도 썼는데 엄청 감동받았다는 지인의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교보에서 고미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죠. 엄청 저서가 많더군요. 단독저자이거나 참여저자이거나 책들이 모두 주제가 흥미롭더군요. 그래서 몽창 구입했죠. 11종입니다.

 

사실은 제가 예전에 이미 고미숙이 번역한 열하일기(/)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자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별로 없었죠. 다만 성실한 한국 고전 연구자인가보다 생각했죠. 열하일기 번역본을 다시 보니까, 이미 박지원에 대한 설명이 있네요. 방송에서 언급했던 것들인데, 비교적 담담하게 씌여져 있어서 그리 주목하지는 못했죠.

http://desica.tistory.com/entry/열하일기를-통해서-근세의-한국의-지식인을-복원해봅니다

 

책들은 왕창 사두었고 교보문고에 소개되는 개략적인 저술의 일부들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고, 그렇다고 그 책들을 하나하나 읽기에는 시간이 없고(절대시간보다는 지금 저의 형편상 꼭 필요한 내용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필 받은 것을 모른 척 하기에는 성정이 허락하지를 않고. 그래서 택한 게 프리뷰입니다. 처음 써보는 형식입니다. 책들의 머릿 글들 위주로 읽고 재밌는 문제의식, 인용하고픈 문장 들, 그리고 제가 나름 끌릴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생각들을 묶어보는 거죠. 이런 정도도 사실 부담이 되죠. 늘 그렇듯이 이렇게 글의 형식이 되면, 뒤돌아보지 않고 마구 써도 최소한 두어 시간은 가거든요. 그래도 한번 배설해두는 게 역시 개운해서 이 정도로 시간과의 타협을 하는 거죠(대게 저의 지인들은 제가 시간에 대해 굉장히 liberal하다고 여기죠. 하지만 정작 시간의 낭비에 대해 결백증적인 기피를 하고 있지만요).

 

먼저, 고미숙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해야 하는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기존 링크를 활용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미 유명인사더군요.

http://www.kyobobook.co.kr/author/info/AuthorInfo.laf?mallGb=KAU&authorid=1000001201#author_intro

고전 평론가 고미숙, 대학 벗어난 인문학의 새 모델 제시: 18~19세기 동양고전 문학 전공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 설립, 상아탑에 갇힌 텍스트 분석 대중의 언어로 풀어 책으로 출간

http://weekly.hankooki.com/lpage/people/200812/wk20081224120812105610.htm

 

사람의 나고 자란 환경이 참 중요한데 정선에서 순수하게 자연과 벗삼아 자랐군요. 고미숙에게서 자연주의의 경향이 많이 발견되는데 그런 배경을 무시할 수 없겠죠. 그런데 마음껏 어울려 지내면서도 친구들과 독서를 많이 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고미숙의 왕성한 독서력과 탐구욕이 여기서 배양되었겠죠. 고미숙이 임꺽정(홍명희 저)3번 읽고나서 그 느낌을 그들이 만들어낸 말과 행위들은 나의 몸 속으로 들어와 끊임없이 세포들을 도발하기 시작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2009, p. 17). 이런 저자의 독서후의 감명을 온 몸으로 하는 공부라고 합니다. 이게 저자의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의 핵심 주제입니다. “왜 호모쿵푸스에요? 공부는 쿵푸’, 곧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p. 8). 이렇게 책읽고 놀고 자연을 벗하는 것이 고미숙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의 청소년기가 공부가 추상적인 별 개의 행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지게 했겠죠.

 

고미숙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다채로운데, 그러한 다채로움의 원천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고전과 근대(Modernity)-이것이 내 공부의 두 축이다”(“이 영화를 보라”(2008, p. 5). 고전이 주는 옛스러움, 자연스러움이라는 한 측면과 더불어, 근대가 주는 세련됨의 다른 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고미숙은 연속극도 엄청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죠. 그러면서 키치적인 면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도 10대와도 통할 수 있는 가벼운 단어와 문장, 패러디에도 능합니다. 그런데 고전적인 측면과 근대적인 측면이 신기하게 잘 버무려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가 고전적인 것, 또는 과거에서 오히려 근대를 뛰어넘는 비전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돌고 돌아서 의외로 미래가 우리가 현재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했던 과거에 온전히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고미숙이 박지원에서 탈근대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그런 예죠. 저자의 공부 역정도 옛날 것과 현대적인 것의 버무림이 보입니다. 독일문학을 처음 대학에서 시작했죠. 옛날에만 해도 좀 현대적인 티를 내고 싶으면 독일어나 불어 좀 해야하고 원서 좀 봐야 했죠(영어도 그렇기는 한데 좀 티가 덜 나죠). 그러다가 4학년부터 한국의 고전에 빠졌다고 하죠. ‘근대적인 것에서 급속하게 전근대적인 것으로 방향전환하죠.

 

고미숙에게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기는 하지만, 한국의 고전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과거와 근대성에 대한 고민과 번뇌는 의식적인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20세기를 살아간 모든 한국인의 고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조선놈은 안돼라는 자학적 표현이 대중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올 때, 한국인은 과거에 대한 통한과 온갖 부조리로 가득찬 챙피스럽기 그지 없는 전근대를 타파하고 근대화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국의 전근대와 근대는 서구에서의 그것보다도 훨씬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대립구도였죠. 그것은 전근대와 근대라는 단순한 내재적 발전단계의 차이가 아니라 절대이성과 같은 서구의 근대에 의해 짓눌린 이중의 고통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서구의 근대는 오히려 신비함에 의해 포장되면서 절대화되죠.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이성(그래서 절대이성)으로 추상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오히려 한국이라는 존재에 오히려 사고가 급속하게 좁혀진다고 할까요? 서구라는 존재에 의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국사회가 변모하는데, 정작 서구는 신비한 힘으로만 느껴지게 되면서 모든 문제를 한국안에서만 풀고자 하는 집착이 생기는 것이죠. 계절과 기후의 원리를 몰랐던 옛날의 고대문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신비한 계절과 기후가 인간에게 가혹하지 않도록 염원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스스로 희생제의를 베풀었죠. 한국에서는 그러한 내적 침잠이 곧 민족의 담론이었죠. 우파적 해석이건 좌파적 해석이건 20세기 한국인은 민족을 한편으로는 우상시하고(“배달 민족”), 자학하고(“조선놈은 안돼”), 종교화하면서(“민족 해방”) 스스로 지지고 볶고 해왔죠. 고미숙 역시 이 점을 짚고 있습니다.

근대에 관해 그토록 많은 글이 양산되었지만 시야를 국경 밖으로확장하는 문제의식은 거의 틈입되기 어려웠다. 오직 저 어긴가에 이상적 근대가 있고, 한국은 그 수준에서 볼 때 이러저러한 측면에서 불규칙적인데, 그것은 대체로 일제 식민통치에 의한 왜곡`굴절 때문이다라는 식의 통념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근대주의와 민족주의의 견고한 결속! 마르크시즘조차 이 긴밀한 유착에 어떤 손상도 입히지 못했을 정도로 근대와 민족은 인문학 연구의 최종 심급이었다. 최근 들어 차츰 동아시아적 시각의 확보가 절실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이론 생산의 수준이 미미할 뿐 아니라 실제로는 여전히 민족과 근대라는 척도를 고수한 채 연구 영역만 양적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2001, p. 13)

 

그래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보다 한국에서의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은 훨씬 더 고통스럽고 치열한 과정입니다. 탈근대사회를 위해서는 당연히 한국의 근대사회를 알아야 하고 그 근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을 알아야 하고(민족과 서구 근대성의 치열한 변증법을), 민족을 알기 위해서는 고전을 다시 봐야죠. 서구의 모더니즘이 경시했던 또는 비판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하게 능지처참에 처해진 게 한국의 전근대고 그 전근대가 고스란히 화석으로나마 기록된 것이 고전이니까요. 그래서 한국에서의 고전 읽기는 근대와 민족이 주는 중압감/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초겠죠. 제가 고미숙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간에 한국사, 한국철학, 한국문학에 계속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강제된 근대와 민족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적, 무의식적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비로서 한국이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혀집니다. 그리고 근대와 민족에서 자유로와야만 새로운 사호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런 여유를 갖을 정도로 이제 숨가쁘게 달려온 근대화 달리기사실상 끝났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TV광고가 내한한 미국의 팝가수에 열광했던 한국 사람을 비춰줌과 동시에 이어서 한국의 소년/소녀 가무단에 열광하는 서양의 관객들을 비춰주었죠. 여전히 이러한 증거에 목마르다는 점에서 근대화 달리기의 잔상이 있지만, 이미 서구 쫓아가기란 근대화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구에 열광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저와 같은 중년 세대 이상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이미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있죠. 그래서 저와 같은 중년 세대 이상은 사실상 모두 된장남, 된장녀일 뿐입니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그런 내상이 없죠. 그들에게는 나고 자라면서 소통해온 세계의 친구들이 있을 뿐이죠.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젊은 친구들에게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차이가 덜 하죠(물론 존재하지만, 그 차별성에 대한 인식은 서구 아이들도 기본적으로 있죠)

 

이렇게 소년/소녀 가무단의 파리 공연을 보면서(사실은 그 공연에 열광하는 서양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서 한국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재발견의 여유와 확신을 갖겠죠. 이 지점이 요즘 서점가게 쏟아져 나오는 한국 고전, 역사, 인문 등의 각종의 교양/전문 서적들의 맥락인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먼저 이에 눈을 뜬 고미숙의 시대가 열린 것이구요. 이러한 고미숙 들이 지금 많습니다. 한국을 재발견해주되, 그 표현과 언어는 현대적인 사람들 말이죠. 이미 모방으로서나 열등의식으로서의 근대가 아니라, 하나의 체득된 플랫폼으로서 근대가 내면화된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들은 열등의식에서 자유로운 채 자유롭고 당당하게 한국의 고전과 그 문화를 활보하는 것입니다. 판소리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열고 있는 이자람이 그렇죠. 이미 서구음악에도 익숙하지만, 서구음악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탁월한 미학을 판소리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자람은 전통을 지키자/보호하자/아끼자라는 고리타분한 주장을 안합니다. ‘판소리가 너무나도 재밌다는 소감을 말할 뿐입니다. 판소리에서 탁월한 현대성을 발견한 것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죠. 판소리 공연을 현장에서 본 게 몇 년 안됩니다만, 그래도 권합니다. 재밌으니까 보라고 말할 뿐이죠. 엄청난 해금입니다. 우리가 과거 정치적인 이유에서 대중음악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죠.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전통 전체가 사실상 금지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인간문화재라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그것을 입증해주죠. 그렇게라도 안하면 존재할 수도 없었고, 문화재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그대로 박물관에서나 보는 박제화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금되었던 전통문화가 요즘 봇물 터지듯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죠.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식상하게 들리고, 대신 해금을 배운다고 하면 제법 세련된 느낌을 주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죠.

 

이러한 저간의 배경이 고미숙을 뜰 수밖에 없게 만드는 필요조건이죠. 뜨는 것은 시대정신과 맞으면 됩니다. 그러면 기본만 해도 됩니다. 고미숙이 고전을 통해서 한국을 근대로부터 해방시킨다는 큰 대의에서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지는데, 평균 이상의 탁월한 개인기 또는 개성이 여러 군데 엿보입니다. 그래서 스타가 되는 것이죠. (1) 지식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만 오만함도 없습니다. (2) 지식의 nationality에서 자유롭습니다. (3) 세속적이면서도 고상하죠.

 

(1) 지식에 대한 존경심과 대범함. 방송에서 본 것 같은데 (고미숙은 EBS 평생대학에서도 몇 번 강의를 했습니다), 고미숙은 이렇게 주장하죠. 인류의 지성의 원천은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그리고 예수의 시대에 이미 갖춰진 것이며, 그 이후의 지식이라는 것들은 그 변주에 다름없지 않는가라고. 서구의 지성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의 역사라고 하기도 하죠. 동양의 지성사는 사실상 공자의 주석이구요(주자의 공자 주석이 곧 성리학이고, 또 다른 많은 주석이 다른 이름들을 달았죠). 저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엄청난 지식의 홍수에 압도되지만 과연 그렇게 지식이 새롭기만 한 것인지요?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닌지. 공자나 석가, 예수의 인문적 통찰을 접하면 굉장히 감동적이거든요. 우리의 사고가 그렇게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죠.

 

약간 튈 지 모르는데, 저는 지식을 프랙탈 기하학으로 여깁니다. 해안선이 복잡하기도 하지만, 또한 단순하기도 하거든요. 굉장히 단순한 기하적 도형이 반복되면서 복잡성을 만들어내요. 눈의 육각형 결정이 기본이지만, 막상 눈의 결정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아무리 지식이 복잡해도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못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컴퓨터의 디렉토리 같은 것이죠. 아무리 하드웨어가 커졌지만, 우리의 지식위계는 결국 그 많은 정보들을 상위 5-6개의 디렉토리로 요약하거든요. 그 디렉토리 밑에 유사한 나무 구조들이 계속 반복되죠.

 

아무리 복잡한 듯해도 지식이라는 게 그런 정도라는 것이죠. 그런데, 변주도 존중해야죠. 공자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 많은 주석들을 단 사람들도 대단한 것이죠. 베에토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핵심 멜로디(몇 개의 음표로 표현되는)에 있는 것이 아니죠. 그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죠. 하지만, 그 핵심멜로디에 대한 무한한 변주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어울리게 구성해낸다는 것이죠. 어느 부분을 들어도 다르지만, 그래도 베토벤의 곡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그 변주의 능력이 베토벤을 차별화시키는 것이죠. 그 변주를 존중해야죠. 뻔한 얘기다라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 생산자들이 엄청나게 생산해내는 그 변주들이 쉽지 않은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 노고와 가치를 인정해야죠. 자기도 그러한 변주에 참여하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구요. 그러한 변주 들 중에 유독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성과도 있을 수 있고, 고만고만한 것들(그래서 곧 잊혀지는)도 있겠죠. 하지만, 그 모든 노력들이 인류의 지식이고 지성의 발전사이죠.

 

한편으로는 대범하되 한편으로는 묵묵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자기 작업이 뛰어나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기가 그러한 공부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죠. 고미숙은 이것을 굉장히 강조해서 여러 대목에 그 뜻을 적어둡니다. 그러한 생각들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 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국사회에 자리한 통념들에 대한 공격으로 가죠. 그것들이 각각 장을 이룹니다. “2. 거짓말 하나 - 공부에는 때가 있다?” 공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자체라는 것이죠. 그렇게 평생을 알아가는 것이죠. 저도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 하지만 노는 것은 때가 있다. 그 나이의 감성에서 놀아야 할 것은 반드시 놀아야 한다.” 10대의 감성으로 놀아야 할 것을 못 놀면 그 시기는 영영 도달할 수 없는 미제사건이 되버립니다. 30-40대에 10대랑 외형상 같이 논다고 해서 그 감성의 고양을 얻을 수는 없거든요. 간혹 세대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10대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불러야 한다는 착한중년세대가 있죠. 다 부질 없는 것입니다. 그 세대의 감성에 충실해서 놀 것을 즐기면 될 뿐입니다. “3. 거짓말 둘 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말할 나위가 없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부연설명 생략합니다. “4. 거짓말 셋 창의성만 있으면 만사 OK?” 요 대목을 정말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미숙도 지적하고 있지만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작용과 창의성 담론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지식이 얻어지는 게 뉴튼에게 떨어진 사과 같은 것이라는 오해가 만연해있죠. 빈둥빈둥하다보면 불현듯 탁월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죠.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지식인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묻지마 연구비 지원을 해주면 연구성과가 쏟아져 나올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죠. 지식이 결코 쉽게 빈둥거리다가 얻어지는 것일 수가 없습니다. 오랜 동안 지식을 익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즐기는 것도 지식의 소양이 필요하거든요. 빈둥거리다가 뛰어난 천재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작겠어요? 굉장히 숨막히는 고통도 감수하면서 지식습득에 열을 올리면서 한계상황들을 돌파해야 합니다. 천천히 유유자작하다가는 책 한 권 읽기 어렵습니다. 마구 쪼여야 읽게 되죠. 이렇게

읽은 게 질이 떨어지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두뇌가 엄청나게 활성화된 상태에서 긴장하고 읽고 읽은 것을 글로 옮겨둬야 비로소 지식이 됩니다. 한국의 지식 사회가 이런 절차탁마를 잃고 있죠. 서양은 여전히 빡세게 고등교육을 시키는 데 말이죠. 다만, 제대로 된 내용을 빡세게 시켜야죠. 한국 교육을 보면 별로 의미가 없는 것들을 빡세게 시키고 있는 게 너무나도 많죠. 고미숙이 정말 잘 지적하고 있죠.

교수들은 말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랑 고시 말고는 관심이 없어.” 학생들은 말한다. “교수들은 회의랑 프로젝트 말고는 하는 일이 없어.”…”모든 것이 갖춰졌건만, 오직 하나, 교수와 학생을 스승과 제자로 엮어 주는 지적 파토스가 사라져버렸다” (“호모 쿵푸스”, p. 23)

 

(2) 지식의 nationality에서의 자유로움. 고미숙은 자신에게 감명을 준 모든 이가 스승입니다. 동서양을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스승을 구하는 것이죠. 그래서 근대성의 지층을 탐사할 때는 푸코가, 동아시아 지성사의 심연을 자맥질할 때는 연암 박지원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나비와 전사: 근대! 18세기와 탈근대를 만나다”, 2006, ‘지은이의 말 중’). 고미숙은 또한 루쉰을 통해 연암을 보고, 연암을 통해 루쉰을 음미합니다. 이러한 초국적 지식 섭렵은 그의 노마드 로맨스이기도 하죠. 여 대목은 세속적 측면에서 서술’.

 

(3) 세속과 고상함. 임꺽정에 대한 저자의 감동이 이러한 맥락에 있죠. 임꺽정의 주인공들은 길 위에서 떠도는 사람들입니다. 고미숙은 멋지게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로로 표방하죠(“임꺽정”, p. 13). 얼핏 비루한 삶일지언정 굉장히 당당하다는 것에 감동받습니다. 그들은 백수들처럼만 보이지만 얽매이지 않음으로서 정신의 자유와 고양을 얻죠. 고미숙은 먼저는 박지원 그리고 이어서 임꺽정에게서 백수들의 위대함을 체득하죠. 그리고 본인의 처지에 조응한다고 좋아하구요. 고미숙도 처음부터 초탈한 사람은 아니어서 원치 않는 프리랜서라는 자괴감에 시달린 시기가 있었죠. 그리스 시대에도 자유인은 직업이 없었죠. 노예들만이 직업이 있었던 것이죠. 저자의 고상함 또는 담대함은 세속(또는 현실)을 강박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의 공간으로 재해석해내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자유롭게 10대 아이들이 쓰는 세속적 언어와 포스트모너니즘의 철학적 개념들이 자유롭게 교우하죠. 일부러 소통을 위해 세속적일 필요도 없고 일부러 현학적이기 위해 고상한 언어들을 쓸 필요가 없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 구사를 할 뿐입니다.  

 

고미숙의 글들에서 다만, 고전을 이해하고 그래서 개인적인 차원의 해방을 얻는 것만은 아닙니다(물론 이런 자연주의자가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은 지금도 존재하죠). 굉장히 현실에서 개인적 차원이 아닌 제도적 차원에서 시사점을 주는 대목들도 존재합니다. (1) 교육/공부하기 (2) 비정규직/노마드 가 그렇습니다. (1) 교육에 있어서 고미숙은 관심이 굉장히 많죠. “제도교육의 부조리보다 대안교육의 부재가 훨씬 더 심각하다라고 대안교육을 비판하는 것은 통렬하죠. 연구소인 수유-너머도 사실상 학령교육을 넘어서서 연령을 초월한 대안 교육기관이기도 하죠. 저 역시 지금의 지나치게 표준화된 제도교육의 틀을 보완할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서당, 서원이 지금의 현재적 의미가 새롭게 발견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죠.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대학교육에 대한 비판도 통렬하죠. 예컨대, 그냥 학생들에게 맡겨버리는 토론 같은 것, 소위 세미나라는 멋지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미숙도 학생들의 자율에 맡긴 토론 수업들은 백발백중 실패한다”(쿵푸스, p. 69)라고 짚고 있죠. 고미숙의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 지침도 참고할만 합니다. 1. 소리내어서 암송하라, 2.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라, 3. 책을 읽어라, 4. 앎의 코뮌을 조직하라. 5. 일상에서 공부하라가 그것입니다(자세한 내용은 교보에서 호모 쿵푸스 책 설명 부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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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특히 강조하는 게 2.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라, 입니다. 종이에 요약 정리하는 것 하지 말고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 앞에서 배운 것 또는 읽은 것, 심지어는 수학 문제 푼 것을 말로 시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핵심 요점이 무엇인지를 말하게 해야 합니다. 이 훈련을 초등학교부터 계속 시켜야 합니다. 학생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고 요렇게 하는 것이 학생에 대한 배려입니다. 말로 대중 앞에서 생각을 하는 것은 완전 오감각을 총동원하는 것입니다. 약간의 긴장과 더불어 오감이 다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지적 훈련이 이루어 집니다.

 

(2) 비정규직/노마드. 얼핏 비정규직 위치에서 고분 분투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미숙인 비정규직은 노마드적 자유라고 주장하는 대목이 너무 멀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고미숙의 통찰이 지금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고 봅니다. 앞서 인용한 바대로 지금의 시대가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로 변화한 것이거든요. 이 점은 현재의 노동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대립구도이죠. 진보주의자들은 비정규직을 철폐하자고 주장하니까요. 저는 오히려 정반대로 모든 직업이 비정규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가설을 품고 있구요. 안정된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떠남에 있어서 걸릴 것이 없이 자유로운 것이죠. 고미숙은 문학적 레토릭으로 구사하지만, 저는 경제학적 언어로 해석합니다. 조직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들이 한정된 시간에 묶여 있는 계약관계일 뿐이라고. 그 계약이 파기되면 새로운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새로운 계약을 채결할 수 있는 당당한 인적자본의 담지자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사회도 조직에 취직할 사람을 길러내서는 안되고, 제 발로 당당히 서있을 수 있는 창업자(entrepreneur)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저의 이러한 해석이 고미숙과는 안 맞을 수도 있겠죠. 고미숙은 문학적이고 저는 경제학적이니까요. 그런 점이 언젠가는 큰 다름의 씨앗일 수도 있겠죠. 그래도 적어도 지금에 있어서 고미숙의 노마드에 대한 레토릭은 그 자체로 굉장히 매력적이고 포스트모던합니다. 고미숙은 배우는 과정은 결국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떠나는 것이라고 하거든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유동성, 낡은 가치들을 교란하는 불안정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역동적인 야생성 등 이것이 이들이 창조해낸 새로운 특이성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단지 추방당한 자들이 아니라, 탈주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의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 탈주자들. 추방과 탈주의 동시성백수의 향연이 마이너리그가 되는 건 바로 이 순간이다”(“임꺽정”, p. 21)

 

이렇듯, 연암에게 있어서 삶과 여행은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길 위에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길을 떠나는 노마드’(유목민)이었던 것. 이질적인 것들 사이를 유쾌하게 가로지르면서 항상 예기치 않는 창조적 선분들을 창안해 내는 존재. 노마드! 열하일기는 이 노마드의 유쾌한 유목일지이다. “열하일기 18세기에 갇히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도 삶과 우주에 대한 눈부신 비전을 던져 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열하일기, 세계최고의 여행기”, ‘머리말’)

 

저 역시 길의 매력에 흠뻑 취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길에 대한 에세이를 연작해볼려고 했구요. 여행기 쓰는 것도 좋아하구요. 우리가 안주라는 것 넘어서서 여행하는 것, 길에 있다는 것, 불안정하다는 것, 그것을 오히려 자유로 여길수도 있지 않을는지
 

마지막으로, 홍명희와 임꺽정의 위대함에 대한 소견 조금. 저는 20세기 한국 문학의 최고봉은 홍명희와 임꺽정이라고 봅니다. 물론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죠. 하지만, 서구의 문학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면이 많죠. 반면에 홍명희는 다른 작가들이 서양의 문법에 갇혀서 고군분투할 때, ‘순 조선적 정조로 임꺽정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임꺽정은 서구의 소설양식보다는 이야기입니다.(고미숙도 이 점을 언급하죠. p. 16) 한국 사람들이 어릴 때 어른들이 잠 재우면서 들려줬던 짧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파편화된 이야기가 오히려 탈근대의 기치가 되어 있죠. 인위적으로 기승전결을 갖춘 문학과 더불어, 그러한 모더니즘 발상 자체가 탈근대론에 의해 공격받는 상황이죠. 홍명희는 그런 맥락과도 무관하게 자기가 생각하기에 한국인들의 이야기로 가장 적절한 형식을 구사했을 뿐입니다. 정말 인위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물 흘러가는 대로 쓰여진 그런 글이죠. 끝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끝을 봐야만 속이 시원한 것도 아닙니다(그리고 사실 끝을 못냈죠). 어느 부분을 들여다봐도 다 재밌습니다. 홍명희가 천재다라고 평은 하면서도 아직은 그 문학적 탁월함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홍명희가 더 제대로 평가받을 시대가 된 것이 아닐런지요.


에구, 급하게 갈기긴 했지만 그래도 개운합니다. 다만 오후가 이렇게 날라갑니다.
 

--- 고미숙의 책들 ----(얼추 7 종의 책을 인용했네요)

고미숙 (2001),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고미숙 (2003),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2006), “나비와 전사, 근대! 18세기와 탈근대를 만나다

고미숙 (2007),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고미숙 (2008), “이 영화를 보라,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2008),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인용하지는 않음)

고미숙, 길진숙, 김풍기 번역, 박지원 저 (2008) “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

고미숙 (2009),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진 마이너리그의 향연

고미숙 (2010),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용하지는 않음)

그밖에 공저로 참여

신영복 외 (2007), “세계고전 오디세이” (열하일기에 대한 글을 고미숙이 씀) (인용하지는 않음)

임형택 외 (2010), “전통, 근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권력” (고미숙은 임꺽정에 대한 글을 씀) (인용하지는 않음)

 

----- 지난 7.28에 쓴 글----“KBS특강 강추(강사 고미숙, 박지원과 정약용을 뉴 웨이브로 해석)”

KBS에서 심야에 하는 TV특강입니다. 밤늦게하니까 어쩌다가 보는데 이번 프로그램(- 4일간 사람이 강의) 제일 좋습니다. 고미숙은 열하일기 한국의 고전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탁월한 사람입니다(강의를 굉장히 하네요). 이번 특강 주제가 굉장히 좋은 , 같은 시기의 불세출의 천재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대비시켜서 상당히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든 것입니다. 박지원은 권력핵심인 노론의 가문 출신이지만 엄청 liberal해서 벼슬을 피했고, 정약용은 범생이고 기존체제내에서 어떻게든 사회를 개혁해볼려고 했죠. 그래서 정약용이 20세기의 모더니즘(기획/관리) 맞다면, 박지원은 21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자유롭고 무형식적이고) 걸맞죠.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

http://www.kbs.co.kr/2tv/sisa/tvlecture/view/vod/1732622_36990.html

 

고미숙은 독문학과를 나와서 국문학 박사를 했고, 현재 민간연구소인 수유-너머 소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민간연구소라는 제도권 밖에 있다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엄청나게 재기 발랄하고 현대에 맞게 고전을 생동감 있게 재해석해내는 군요. 아마도 프리랜서의 생존력이 이런 아닐런지요. 스스로가 철저한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하고, 대중에게 매력 있어야 하니까요.

 

고미숙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프로그램에서도 강사를 하는 같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새로운 시각, 성실한 공부, 대중과의 소통,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 지식인들이 나와주니까 굉장히 반갑습니다. 다만,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 이런 분들이 만들어집니다. 제도권은 고리타분하구요.

 

개의 번역본(고미숙과 김혈조) 열하일기에 대한 저의 감상문은 다음 링크입니다. http://desica.tistory.com/entry/열하일기를-통해서-근세의-한국의-지식인을-복원해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저평가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의 1700년대는 정말 재밌고 지성사적으로 뛰어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문체 시도, libearal 감성 , 무척이나 현대적입니다.

 

흔히, 우리의 역사는 화석화시킨 면이 있죠. 예를 들면, 정조와 워싱턴 중에서 누가 옛날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대게 정조라고 답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조지워싱턴이 수년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801, 정조보다 1 늦게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비교적 최근의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옛날로 여겨지죠. 그만큼 한국의 역사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동감이 있는 해석과 탐구를 안했던 것입니다.

 

http://www.kbs.co.kr/2tv/sisa/tvlecture/view/vod/1732622_36990.html

조선후기 ‘뉴 웨이브' 를 만나다


‘새로운 물결’ 이라는 뜻의 뉴 웨이브(New wave)는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뜻한다.
그런데, 1960년대 프랑스의 까이에 뒤 시네마나 1970년대의 브리티시 록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18세기 조선에 이미 ‘뉴 웨이브’가 있었다. 바로 정조와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정약용, 이덕무, 박제가, 홍대용, 유득공, 이옥에 이르는 조선 후기 지식인 집단이 그 주인공들이다
.
지금은 ‘북학파’ 혹은 ‘실학파’ 라는 한 마디로 요약돼버리는 그들의 세계는 실제로 훨씬 드넓고 역동적이었다. 2011 7, 시간을 ‘문워킹’ 하여 18세기 조선을 빛나게 했던 ‘뉴웨이브’ 와 그들이 일군 ‘르네상스’ 를 만나본다.


- 연사 : 고미숙 (고전평론가/ 국문학 박사)


3. 발랄하고 유쾌한 여행기〈열하일기〉
조선시대를 통틀어 500번이 넘는 사절단이 청나라에 다녀왔고, 그 경험을 담아 100여 종이 넘는 기행문이 발표됐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그 수많은 기행문 중에서도 단연 발군인 동시에 ‘변종’ 으로 평가된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모든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지적유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열하일기>를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뉴 웨이브 적 사건’으로 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연암의 발랄하고도 발칙한 기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열하일기>를 통해 18세기 동북아 정세와 학술-문화 기상도를 만나본다. 또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함께 헤아려본다